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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테크놀로지가 IT 미래 바꾼다 ② 한국, 고차원 기술로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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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하이닉스는 지난달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반도체 후공정 공장인 하이테크반도체 유한공사의 준공식 행사를 열었다. 1600여 명의 종업원이 일하게 될 이 회사에선 1Gb(기가비트) D램 기준 월 1억 개가량의 후공정 작업이 이뤄지며, 연간 3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닉스는 패키징과 테스팅 등 후공정 작업을 외부 전문업체에 위탁하는 비중을 높여왔다. 하지만 하이테크반도체는 하이닉스가 운영한다. 직접 챙겨야 할 정도로 후공정 작업이 중요해진 것이다.

국내에서도 차세대 패키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분야의 전문기업은 물론이고 칩 생산업체까지 패키징 신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도 이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앰코코리아 광주 공장에서 직원들이 반도체 후공정 과정 중 하나인 패키징 작업을 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 회사는 고부가가치 패키징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앰코코리아 제공]

◆미세공정의 한계=그동안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패키징을 포함한 후공정 분야는 찬밥 신세였다. 전체 수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에 관심과 지원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반도체 회로의 선폭이 줄면 같은 크기의 웨이퍼에서 훨씬 많은 반도체 칩을 만들 수 있다. 수익성은 배로 뛴다. 삼성과 하이닉스가 메모리 시장을 지배해온 것도 이런 미세공정을 남보다 앞서 개발했기 때문이다. 반면 패키징을 비롯한 후공정은 기술 수준이 낮은 ‘포장 기술’ 정도로 인식됐다. 인건비가 싼 외국 업체에 외주를 주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러다 보니 현재 패키징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3%(매출액 기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세공정이 40나노급까지 발전하면서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반도체 칩의 성능이 아무리 개선되더라도 전기적 신호를 밖으로 전달해주는 패키징 기술이 따라오지 못하면 병목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소재의 특성상 더 이상 회로 폭을 줄이기도 어려워졌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장비와 공정개선에 들어가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경제성이 떨어져서다. 칩의 저장용량이 18개월마다 2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달한 셈이다.

전자부품연구원 강남기 디스플레이연구본부장은 “칩을 잘 포장해 부피를 줄이면 돈을 적게 들이고도 반도체 미세공정을 향상시킨 것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스마트폰처럼 다양한 칩이 한 기계 안에 들어가는 전자기기가 늘면서 칩 부피를 줄이는 게 중요해졌다.

◆기술은 좋지만 장비가 문제=매출에서는 대만과 싱가포르 업체에 뒤지지만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한국 업체들의 수준은 최상위급이다. 패키징 업계에선 세계에서 기술이 가장 앞선 업체로 싱가포르의 스태치팩을 꼽는다. 옛 현대전자의 패키징 사업부가 모태인 스태치팩은 반도체 칩을 위로 쌓은 뒤 구멍을 내서 전기신호를 통하게 만드는 TSV(Through Silicon Via) 기술을 상용화했다.

국내 업체인 네패스도 이미 TSV 공정기술을 개발했고, 수율을 높여 상용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칩이 아닌 웨이퍼를 쌓아올려 패키징 작업을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아남반도체의 미국 판매법인이 본사를 인수한 앰코코리아의 경우 게임과 네트워킹, 휴대전화용 패키징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2007년부터 서울테크노파크의 ‘차세대 패키징 공정장비 실용화 사업’을 통해 패키징 분야의 차세대 공정과 장비 개발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패키징 장비는 아직 초보 수준이다. 국내에서 몇 안 되는 후공정 장비업체 중 하나인 고려반도체의 이승우 팀장은 “장비업체가 영세해 미리 장비를 개발해 수요를 일으킬 여력이 없다”며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외국 장비업체가 정한 공정에 따라 반도체를 만들어야 하는 기술 종속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패키징 산업 장기발전 계획에 장비 개발을 중요한 분야로 꼽고 지원을 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우태희 주력산업국장은 “그동안 전공정 부문에 많은 지원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면 앞으로는 후공정과 장비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로 균형 잡힌 산업구도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종현 성균관대 교수 “휘는 소재 나오면서 패키징 더욱 중요해져”

“패키징 분야에서 신기술을 먼저 확보하지 못하면 앞으로 반도체 강국의 지위도 지키기 어려워질 겁니다.” 성균관대 재료공학부 안종현(사진) 교수는 패키징 기술이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그래핀 투명전극을 30인치 크기로까지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핀은 투명하면서 휘는 성질까지 갖춘 소재다. 그의 연구 결과는 대형 디스플레이나 터치스크린도 접거나 둘둘 말아 다닐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안 교수는 “휘는 소재가 도입되면서 패키징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패키징 기술이 구체적으로 현실을 어떻게 바꾸는가.

“스마트폰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굉장히 많은 기능이 들어가 있는데 각 기능마다 칩이 필요하다. 이런 칩을 포장하고, 외부와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패키징 기술이 발전하면서 작지만 강력한 기능의 스마트폰이 나올 수 있었다.”

-최근 들어 패키징에 관심이 부쩍 늘었는데.

“반도체 산업은 같은 크기의 웨이퍼에 얼마나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어넣을 수 있느냐로 기술력이 판가름난다. 그러려면 회로를 구성하는 선의 폭을 줄여야 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줄이는 데 한계가 온 것 같다. 그런데 같은 용량의 트랜지스터를 두세 겹 쌓을 수 있다면 용량을 두세 배 늘리는 것과 같다. 대만 회사는 두 겹 쌓는데, 삼성이 네 겹으로 쌓을 수 있다면 생산성이 두 배로 커지는 것이다. 이런 기술은 기존 반도체 기술이 아니라 패키징 기술로 해결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지금까지는 핵심 기술만 자체 해결하고 나머지는 외주를 줘서 해결했다. 물량에서 대만에 뒤진 이유다. 하지만 차세대 핵심 기술면에서는 여전히 선두그룹에 있다. 문제는 개발한 기술을 얼마나 빨리 양산에 적용할 수 있느냐다. 삼성이 40나노 공정까지 업계를 이끈 것은 해당 기술을 6개월 정도 앞서 양산에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특별취재팀=최현철(싱가포르)·문병주(홍콩·가오슝·신주)·한애란(도쿄·후쿠오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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