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그때 오늘

“소나 말을 놀라게 하지 말 것” … 최초의 자동차 관련 법규 공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런던 그래픽 뉴스’ 1909년 2월 20일자에 실린 삽화. 프랑스 영사의 이탈리아제 란치아 자동차가 서울에 나타난 장면을 그린 것이다. ‘한국인들은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들고가던 짐도 내버리고 숨기에 바빴다…소와 말도 놀라서 길가 상점이나 가정집으로 뛰어들었다’는 설명이 부기(附記)되었다. 자동차가 도로의 폭군으로 등장하는 상황을 이보다 생생히 묘사하기도 어려울 듯하다.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첫선을 보인 해는 1898년으로 추정된다. 이해 3월 19일자 ‘런던 그래픽 뉴스’는 서울 거리에서 깃발을 들고 교통 정리를 하는 영국공사관 수비병 삽화를 실었는데, 이는 런던에서 자동차를 통제하던 방식과 같았다. 1903년에는 고종황제의 미국제 어차(御車)가 도입되었으나 러일전쟁 중에 사라져 버렸다. 1908년에는 프랑스 영사가 자동차를 가져 왔고, 경술국치(1910년) 이후에는 총독과 고종, 순종에게 각각 승용차가 배정되었다. 민간인으로 처음 자가용 승용차를 탄 이는 손병희로, 1915년부터 캐딜락을 타고 다녔다.

1915년 7월 22일, 이 땅 최초의 자동차 관련 법규인 ‘자동차취체규칙’이 경무총감부령 제6호로 공포되었다. 서울에 50여 대, 전국에 80여 대의 자동차밖에 없던 시절이지만 일본 법령을 일부 변경해 조선에 적용한 것이다. 이 법령은 자동차의 등록 절차, 구조와 형식은 물론 영업자·소유자·운전자·탑승자 등 자동차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을 규정한 종합 법규였다.

총 29조 61항으로 이루어진 이 법규 중 인상적인 조항 몇 개만 들어 보자. ‘차륜(車輪)은 고무 타이어를 사용할 것’(3조 1항), ‘제동기는 2개 이상 구비할 것(드럼 브레이크와 엔진 브레이크를 말함)’(3조 2항), ‘중량 770파운드 이상의 차량은 역행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출 것’(3조 7항), ‘속도는 시내에서 8리(32㎞), 기타 지역에서 12리(48㎞)를 초과할 수 없다. 단 복잡하거나 좁은 길, 길 모퉁이, 다리 위, 판자로 덮은 길 등에서는 서행한다’(11조), ‘승합 자동차에 탑승한 자는 노래를 부르거나 시끄럽게 떠들어서 다른 사람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17조 2항), ‘우마(牛馬)가 가까이 있을 때에는 속도를 늦추며 음향기(경음기) 사용에 주의하여 놀라지 않도록 조치할 것. 우마가 놀라 뛰거나 또는 그럴 우려가 있을 때에는 바로 정차하거나 길가로 대피할 것’(17조 8항), ‘다른 차와 나란히 달리거나 또는 경쟁하지 말 것’(17조 9항).

자동차가 출현한 당초에는 사람과 동물, 자동차가 같은 길을 이용했다. 그러나 곧 사람은 길가로 밀려났고, 길 복판은 자동차와 우마 차지가 되었다. 얼마 후 자동차는 우마마저 몰아내고 도로를 완전히 점령했다. 자동차는 또 대기를 오염시키고 사람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대인의 자동차에 대한 애착은 계속 깊어 가고 있다. 자동차 없이 살 수 없다면, 더 안전하게 운행하고 덜 유해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