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월 말 거제도서 판화전 돌아온 마광수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 작품을 설명하는 마광수 교수(左)와 이목일 판화가. 18년 지기인 두 사람은 25일부터 2인 판화전을 거제도에서 갖는다. 신동연 기자

마광수(54). 그를 다시 만났다. 4년 하고도 두어 달 만이다. 2000년 늦가을께 어느 술자리, 그때 그는 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초점 잃은 두 눈은 쉼없이 흔들렸고, 한 시간 남짓 사이에 한 갑도 넘게 담배를 피워댔다. 그때 그는 "모든 걸 포기했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3일 만난 마광수는 4년 전과 분명 달랐다.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당뇨와 우울증 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대신 말투는 단호했다. 예전의 맥 풀린 소리가 아니다. 재기의 의지가 묻어나는 음성이다.

"곧 판화전을 엽니다. 이목일 형과 2인전입니다. 재기 무대죠. 3월에 산문집이 나올 거고, 장편 소설도 준비했습니다."

4년 전 그는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때 우울증에 빠졌고, 대인기피 증세도 보였다. 2003년 부교수로 강단에 복귀했지만 외부 노출은 극히 삼갔다. 그 사이 그는 변해 갔다. "이젠 지쳤다. 앞으론 '섹스'란 말도 안 하겠다"라는 항복 선언만 종종 들려왔을 뿐이다. 그랬던 그가 재기를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문학이 아니라 미술이다.

"'즐거운 사라'사건으로 구속되고, 대학에서 쫓겨났던 1992년에도 그림만 그리면서 살았어요. 이번에도 미술로 재기를 시작합니다. 힘들 때마다 이상하게 미술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

사실 예술인 마광수는 미술부터 시작됐다. 초등학생 때 미술대회 입상이 그의 첫번째 수상 이력. 홍익대 강사였을 땐 연극반 지도를 맡았다. 그때 제자가 설치작가 이불이다. 이번에 2인전을 하는 판화가 이목일(54)과는 18년 친구다. 처음부터 마 교수를 설득하고 2인전을 기획한 인물이다. 이 작가는 "마 형은 강단과 문단에서 받은 설움을 미술로 극복해왔다"고 덧붙였다.

전시회엔 이 작가의 판화 50여 점, 마 교수의 판화 5점과 유화.수목화 등이 전시된다. 마 교수의 판화는 기존에 발표했던 유화를 판화로 다시 만든 것. 유화.수묵화도 94년 개인전 때 작품에서 골랐다.

"예전 작품을 형식만 달리했다는 건 그때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이겠지요. 그건 앞으로 낼 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직도 '야한 여자'가 좋습니다."

"다시는 '섹스'란 말도 안 꺼내겠다고 하셨는데…" 라고 묻자, 마 교수는 주저없이 답했다.

"요즘 젊은이 손톱을 보세요. 형형색색의 기다란 손톱. 과거에 제가 성적 상징처럼 표현했던 겁니다. 그땐 '변태'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어요. 그런데 요즘엔 아예 네일아트가 인기랍니다. 제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요. 시기가 조금 빨랐을 뿐입니다."

'즐거운 사라'에 대한 음란물 판정과 구속으로 시작된 침잠의 세월 십여 년. 이 세월을 그는 "여자 ('즐거운 사라'의 사라)를 잘못 만나 통째로 잃어버린 40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을유년 벽두 그는 재기를 말한다. 어쩌면 다시 "호되게 당할지도"모른다. 젊은이 손톱이 변화한 만큼 세상도 변화했다고 장담하기 힘들다. 그러나 지금 마광수는 다시 싸울 채비를 마쳤다. '전쟁이 아니면 평화가 아니라 권태(시 '권태'에서)'라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시회는 경남 거제예술문화회관(1월 25일~2월 20일)을 시작으로, 창원과 서울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손민호 기자

마광수(54). 그를 다시 만났다. 4년 하고도 두어 달 만이다. 2000년 늦가을께 어느 술자리, 그때 그는 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초점 잃은 두 눈은 쉼없이 흔들렸고, 한 시간 남짓 사이에 한 갑도 넘게 담배를 피워댔다. 그때 그는 "모든 걸 포기했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3일 만난 마광수는 4년 전과 분명 달랐다.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당뇨와 우울증 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대신 말투는 단호했다. 예전의 맥 풀린 소리가 아니다. 재기의 의지가 묻어나는 음성이다.

"곧 판화전을 엽니다. 이목일 형과 2인전입니다. 재기 무대죠. 3월에 산문집이 나올 거고, 장편 소설도 준비했습니다."

4년 전 그는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때 우울증에 빠졌고, 대인기피 증세도 보였다. 2003년 부교수로 강단에 복귀했지만 외부 노출은 극히 삼갔다. 그 사이 그는 변해 갔다. "이젠 지쳤다. 앞으론 '섹스'란 말도 안 하겠다"라는 항복 선언만 종종 들려왔을 뿐이다. 그랬던 그가 재기를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문학이 아니라 미술이다.

"'즐거운 사라'사건으로 구속되고, 대학에서 쫓겨났던 1992년에도 그림만 그리면서 살았어요. 이번에도 미술로 재기를 시작합니다. 힘들 때마다 이상하게 미술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

사실 예술인 마광수는 미술부터 시작됐다. 초등학생 때 미술대회 입상이 그의 첫번째 수상 이력. 홍익대 강사였을 땐 연극반 지도를 맡았다. 그때 제자가 설치작가 이불이다. 이번에 2인전을 하는 판화가 이목일(54)과는 18년 친구다. 처음부터 마 교수를 설득하고 2인전을 기획한 인물이다. 이 작가는 "마 형은 강단과 문단에서 받은 설움을 미술로 극복해왔다"고 덧붙였다.

전시회엔 이 작가의 판화 50여 점, 마 교수의 판화 5점과 유화.수목화 등이 전시된다. 마 교수의 판화는 기존에 발표했던 유화를 판화로 다시 만든 것. 유화.수묵화도 94년 개인전 때 작품에서 골랐다.

"예전 작품을 형식만 달리했다는 건 그때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이겠지요. 그건 앞으로 낼 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직도 '야한 여자'가 좋습니다."

"다시는 '섹스'란 말도 안 꺼내겠다고 하셨는데…" 라고 묻자, 마 교수는 주저없이 답했다.

"요즘 젊은이 손톱을 보세요. 형형색색의 기다란 손톱. 과거에 제가 성적 상징처럼 표현했던 겁니다. 그땐 '변태'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어요. 그런데 요즘엔 아예 네일아트가 인기랍니다. 제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요. 시기가 조금 빨랐을 뿐입니다."

'즐거운 사라'에 대한 음란물 판정과 구속으로 시작된 침잠의 세월 십여 년. 이 세월을 그는 "여자 ('즐거운 사라'의 사라)를 잘못 만나 통째로 잃어버린 40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을유년 벽두 그는 재기를 말한다. 어쩌면 다시 "호되게 당할지도"모른다. 젊은이 손톱이 변화한 만큼 세상도 변화했다고 장담하기 힘들다. 그러나 지금 마광수는 다시 싸울 채비를 마쳤다. '전쟁이 아니면 평화가 아니라 권태(시 '권태'에서)'라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시회는 경남 거제예술문화회관(1월 25일~2월 20일)을 시작으로, 창원과 서울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손민호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