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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이 항암제에 눈을 달아 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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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암을 정복하는 것은 인류의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홍역이나 독감처럼 예방주사로 암을 예방할 수는 없을까? 유전자 시대를 맞아 암 예방과 완치에 대한 희망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그동안 외국에서 개발된 항암제를 들여와 주로 사용하던 우리나라도 최근 대통령 주재 국가과학기술위원회 회의에서 '암을 정복하자'며 연구체제를 획기적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각종 암퇴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암 정복에 큰 희망을 주고 있는 '마법의 바이오 신약' 연구는 어디에 와 있는가를 알아본다.

편집자

미국 바이오업체인 젠자임 몰큘러 온콜로지사는 지난 6월 미국 유전자치료법학회에서 획기적인 암치료제의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실제 암세포와 면역세포를 전기충격으로 융합시킨 뒤 피부암·신장암 동물에 주사하자 암 치료 효과가 아주 좋았다고 밝혔다. 이는 암 세포 자체를 콜레라 예방 때 죽은 병균을 주사하듯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체 내에서 병에 대항하는 세포가 표적인 암을 정확하게 알아보게 하고, 암 세포만을 죽일 수 있게 한다.

지금까지 암을 정복하지 못한 것은 암세포와 정상세포의 차이를 우리 몸에서 병과 싸우는 방어군격인 면역 기능이 제대로 식별하지 못해서였다.

생명공학은 정상적인 세포는 죽이지 않고 암 세포만을 찾아 죽이는 '미사일 신약''맞춤 암치료제'개발에 기폭제가 되고 있다. 어느 정도 예방도 가능한 백신도 선보이고 있다. 몇년씩 걸리던 암치료제 개발 기간도 몇개월로 단축되고 있을 정도다.

◇'눈'달린 항암제=화학물질을 섞어 만든 대부분의 항암제는 부작용이 심하다. 항암치료를 받고 나면 환자들은 극심한 고통과 머리털이 빠지는 불편을 호소한다. 엉뚱한 병을 얻기도 한다. 항암제가 암세포인지 정상세포인지 알 수 없어 어느 조직이고 간에 막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포분열이 빠른 암세포의 특징을 이용한 항암제를 쓰면, 역시 빠르게 세포분열하는 골수세포도 죽여버린다.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제약업체들은 바이오기술을 이용해 부작용을 줄이는 대신 표적인 암덩어리를 찾아갈 수 있는 '눈'을 암치료제에 달아주는 데 연구력을 모으고 있다. 즉 암 치료제에 암 식별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암 세포에 특별히 많은 물질(단백질)을 식별하게 하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대부분의 피부 흑색종에는 'MAGE'라는 단백질이, 유방암과 난소암에는 'HER2'와 'NEU'라는 단백질이 많이 있다.

콜레라나 홍역 예방주사와 같이 암세포를 알아보도록 만든 항체를 이용해 목표물인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방법도 최근 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다. 미국 국립암센터에 임상시험을 등록한 암치료제 중 1백40여종이 항체를 이용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 바이오제약회사인 제네텍이 임상시험 중인 20개 신약 중 9개가 역시 항체 신약일 정도다.

항체를 이용한 암 세포 공격은 일반 예방주사의 원리와 비슷하다. 미리 암 세포의 특이한 구조나 단백질을 동물에 주사해 인체 방어군에 해당하는 항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 항체는 어떤 것이 암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체에 이를 주사하면 암을 찾아 공격하게 된다.

미국의 유전공학회사인 메다렉스와 애브제닉스는 2000년 1백% 인간 항체를 만드는 쥐를 개발했다. 이 쥐로 여러가지 암 관련 항체를 만들어 인체에 주사하면 암세포만 골라 죽일 수 있다. 항체에 방사성동위원소나 형광물질을 부착해 암 공격력을 높이거나 진단을 정확하게 할 수도 있다. 항체를 이용한 치료제가 각광을 받는 것은 생약으로 부작용이 거의 없는 데다 개발기간이 몇개월로 극히 짧아서다. 돈도 적게 들고 다양한 항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동물에서 인간항체를 만들 정도의 고도로 발달한 유전공학이 필요하다.

◇부르는 게 약값=생명공학 발달로 암치료 후보물질이 며칠에 하나씩 나올 정도다. 인간지놈 지도와 로봇을 이용해 초고속으로 후보물질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바이엘 AG사는 지난해 신약후보물질 시험을 8개월 만에 끝냈다. 과거에는 무려 2년8개월이나 걸렸던 일이다.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정준호 교수는 "생명공학의 발달로 암 정복의 가능성은 아주 커졌다"며 "암 치료제가 없어 죽기보다는 약값을 대기 어려워 죽는 시대가 곧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바티스의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1년 약값이 약 3천6백만원, 내년에 시판할 파마시아의 대장암 치료제인 캠토사는 7천여만원 등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런 유전공학 암치료제의 고가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한국산 바이오 암치료제 전무=서울대·포항공대·경희대·국립암센터 등에서 유전공학을 이용한 암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으나 임상단계에 이른 것은 하나도 없다. 과기부의 프런티어사업인 인간유전체연구사업단에서도 간암·위암 유전자를 찾아 내고 있으나 상용화까지는 아직 멀었다.

국립암센터 김창민 연구소장은 "암에 의한 국부의 손실은 갈수록 늘고 있다"며 "기초적인 암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암 치료제의 수입의존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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