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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도 도요타도 울었다 … 컨슈머리포트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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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그가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왔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1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본 한 해외 블로거의 평이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획기적 제품을 내놓으며 잡스가 만들어 온 신화와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는 이날의 고백을 대비시킨 것이다.

그런데 그를 끌어내린 건 전통의 권위지 뉴욕 타임스(NYT)도, 금융시장을 거미줄처럼 커버하는 블룸버그통신도, 전문성으로 무장한 유명 정보기술(IT) 블로그도 아니었다. 74년 된 소비자 잡지 컨슈머리포트였다. 결국 왕인 소비자가 신을 이긴 것이다.


아이폰4를 둘러싼 논란은 출시 때부터 줄곧 제기됐다. 특정한 방식으로 쥐면 수신 강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각종 인터넷 매체와 블로그에 떠다녔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답변은 극히 간단했다. “그렇게 쥐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후 애플 열혈팬과 비판적인 블로거·언론 간의 지루한 논쟁이 이어졌다. 이에 종지부를 찍은 게 컨슈머리포트였다. 12일 자체 테스트를 통해 수신 결함이 하드웨어의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며 “아이폰4를 추천할 수 없다”고 웹사이트를 통해 밝혔다.

그러자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던 잡스는 급히 일정을 당겨 돌아왔고,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회견에서 잡스는 자신과 애플을 공격하는 언론에 줄곧 불평을 쏟아냈다. ‘우리가 잘나가기 때문에 때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하지만 컨슈머리포트의 테스트가 나오자 그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는 “내용을 보고 놀라고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결국 해법도 컨슈머리포트의 제안을 따랐다. 컨슈머리포트는 14일 케이스를 쓰면 수신 강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실험내용을 웹사이트에 실었다.

컨슈머리포트의 위력은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에서도 확인됐다. 지난 4월 이 잡지는 도요타의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렉서스 GX 460이 고속 주행 시 전복 위험이 있다며 독자들에게 “구입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도요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미국 내 판매를 잠정 중단하고 리콜에 들어갔다.

컨슈머리포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NYT는 최근 첨단의 뉴미디어가 갖지 못한 걸 이 잡지가 갖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다. ‘기즈모도’와 같은 유명 블로그의 영향력은 IT업계와 매니어층에 주로 미친다. 하지만 컨슈머리포트가 한번 문제를 삼고 나서면 그 파장은 실리콘밸리를 넘어선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바닥재에서부터 청소기까지 등 다양한 상품을 평가해 오며 오랜 기간 구축해 온 신뢰”가 있다는 게 NYT의 해석이다.

조민근 기자



☞컨슈머리포트는  유료독자 720만 명 … 상품 테스트 예산만 한 해 253억원

매년 3월이 되면 전 세계 자동차 업계는 바짝 긴장한다. 컨슈머리포트가 매년 한 차례 발간하는 자동차 특집호 때문이다. 차급별로 성능과 안전도를 직접 평가해 싣는 결과는 미국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컨슈머리포트는 뉴욕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인 소비자연맹이 발간하는 월간지다. 잡지의 파워는 광범위한 독자들에게서 나온다. 유료 구독자만 720만 명으로 오프라인 구독자와 웹사이트 회원이 각각 390만 명, 330만 명이다. 구독자가 2004년 이후 33% 증가하는 등 꾸준히 느는 추세다.

‘오직 소비자의 이익만 생각한다’는 게 이 잡지의 모토다. 외부 광고는 싣지 않고, 테스트용 제품도 직접 돈을 주고 구입한다. 1936년 잡지가 처음 발간됐을 때는 주로 선풍기나 라디오 같은 값싼 제품이 검토 대상이 됐다. 예산 부족으로 비싼 제품을 사서 시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규모 자체 실험 시설을 갖추고 연간 상품 테스트 예산만 2100만 달러(약 253억원)를 쓴다. 생활용품·자동차·유아용품·전자제품·식품·건강제품·여가용품 등 7개 주요 부문에 100명 이상의 테스트 전문가가 활동하고 있고, 데이터 수집 등을 위해 25명의 조사요원을 따로 두고 있다. 또 신분을 숨긴 채 매장을 방문해 평가하는 150명의 ‘미스터리 쇼퍼’가 미국 전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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