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합 분식 적발못한 회계법인 상대 "78억원 손배소송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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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예금보험공사가 고합의 분식회계를 적발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1996년도에 외부감사를 맡았던 A회계법인과 회계사 4명을 상대로 78억5천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라고 12일 고합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 통보했다.

실제 소송을 내는 주체는 직접 피해를 본 고합이 된다. 고합은 조만간 A회계법인과 회계사에 대해 채권 보전 등 소송절차를 개시할 예정이다. 고합은 이미 장치혁 씨등 96년 당시의 임원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정부가 기업의 분식회계에 대한 감사 소홀 책임을 물어 회계법인과 회계사에 거액의 손배소를 제기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보 관계자는 "고합은 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인 96회계연도에 분식회계를 통해 이익을 부풀려 회사에 손실을 초래했고, 이 과정에 외부감사를 맡았던 A회계법인과 담당 회계사는 분식회계를 적발하지 못한 중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들은 분식회계가 없었으면 이익이 나지 않아 납부하지 않아도 될 법인세 53억3천만원과 분식회계를 통해 결산시 주주에게 부당하게 이익배당한 25억2천만원에 대해 연대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소송은 99년 11월 금감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가 감리를 통해 분식혐의를 적발한 96회계연도의 부실 책임만 포함했다"면서 "다른 회계연도의 분식 혐의도 추가로 포착돼 증선위에 감리를 의뢰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증선위의 판정(감리)결과에 따라 소송액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예보 관계자는 "최근 고합등 부실책임 조사를 진행해온 13개 기업 중 분식 혐의가 포착된 진도·나산 등 4개사의 분식회계 판정을 증선위에 의뢰했으며, 나머지 기업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분식회계 확인을 거쳐 소송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엔론·월드컴 등의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전세계적으로 분식회계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번 소송은 국내 회계업계의 낡은 관행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A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기업이 책임지고 작성한 감사보고서에 대해 감사 의견만 표명한 회계법인과 회계사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하고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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