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북풍'먹혀들지 않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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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풍이 불어닥칠 모양이다. 이번에는 '신(新)북풍'이란다. 대선 때마다 어김없이 불었던 바람이건만 이번엔 삭풍(朔風) 아닌 미풍(微風)이다.

북한의 위협을 들먹여 겁먹은 유권자들 마음을 집권당에 붙들어 놓으려던 선거공작이 북풍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북한의 협조적 자세에 기대려는 전략이다. 햇볕정책의 성과를 앞세워 떠나가는 민심에 호소해 보겠다는 '신판(新版)' 북풍이다.

지난날 국내정치에 북한을 끌어들인 공작의 피해자는 대부분 현 정부 지도자들이다. 그래서 포용정책으로 일관했던 정부가 이런 의혹을 받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정황을 보니 바람이 불어닥칠 이유는 있는 것 같다.

임기내 햇볕정책에 매듭을 짓고 싶은 정부의 근거있는 욕심이다. 또 당 떠난 대통령이라지만 대선 앞두고 표류하는 집권당에 무언가 보태고 싶은 심정 이해한다. 게다가 평양발 외신이 전하듯 북한 스스로 변화를 시험하고 있다면 남측의 맞장구에 따라 따스한 바람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신북풍' 음모를 제기한 야당이나 의심받는 이들 모두 바깥세상에 무심하다는 데 있다.

정치권은 대선공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주변국들의 계산은 냉엄하다. '악의 축(軸)'과의 '조건없는 대화'마냥 한 입으로 두말하는 미국이다. 경수로는 지어주되 핵사찰은 제때 받으라며 북한을 밀어붙인다. 또 지난해 9월 테러사태 이후 미국의 환심을 사려 경쟁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북한의 우방들이다.

러시아는 미사일방어체제(TMD) 논란에서 중국의 뒤통수를 치며 미국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면서도 까탈스런 미국과 달리 평양 지도부에 안도감을 전하는 틈새 파고들기를 구사한다.

중국도 반테러 전쟁에서 미국편에 섰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촉구하는 보고서들이 잇따라 나오지만 테러 상대하기 바쁜 미국의 주적(主敵)에선 일단 벗어났다. 오히려 미국의 견제가 닥치기 전에 경제력부터 키우자며 잰걸음이다.

바야흐로 북한도 전방위 외교에 동참했다. 과거 우방과의 관계를 복원하면서 미국과 일본에 새롭게 접근할 채비를 서둘고 있다. 게다가 대선 앞둔 남쪽 정부가 간절히 바란다면 밑질 것 없는 동북아 장기판에 구미가 당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주변국 상대로 줄타기 외교에 골몰하는 북한과는 대조적이다. 미군 재판권 이양, 대사관 신축 등을 놓고 민심은 동맹국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를 빤히 보면서도 미국에 대한 전략적 자세가 무엇인지 설명하려는 진지한 노력은 어느 정당에서도 볼 수 없다. 또 마늘분쟁, 탈북자 처리로 시끄럽지만 중국을 어찌 상대할 것인지 큰 그림 그려내는 대선 후보는 없다.

혹시라도 햇볕정책의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나 대선정국 흔들기의 유혹에서 출발한 것이 '신북풍'이라면 이는 집권당의 패착(敗着)이 될 것이다. 과거 북풍의 피해자였다며 하소연해도 먹혀들지 의문이다. 한편 '조건부 포용'이란 실천하기 어려운 야당의 수사학이나 햇볕정책에 대한 조건반사적 매도(罵倒) 역시 국민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북한이 휘젓고 다닐 장기판에 '졸' 노릇 자처하는 여야의 대선공방이 '신북풍'의 실체라면 그런 바람은 국민들에게 먹혀들지 않는다.

논설위원 겸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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