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금 나누는 조건으로 남한行 지원 '탈북회사' 국내에 10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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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국 내 탈북자들을 전문적으로 도와 국내에 입국시킨 뒤 거액을 받아내는 기업형 탈북 지원조직이 성행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정부가 입국 탈북자들에게 정착금(1인당 약 3천7백만원)을 주는 점에 착안,이중 일부를 받기로 하고 탈북자들을 규합해 집단으로 입국시킨다.이 과정에서 이들 조직과 탈북자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식구들과 함께 북한을 탈출, 중국 옌볜(延邊)에 숨어있다가 국내의 한 탈북 지원조직을 소개받아 제3국을 통해 입국한 金모씨.그는 입국 전 "성공하면 정착금 중 1천만원을 떼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부만 지불한 뒤 거주지를 옮겨다니다가 주소지를 추적해온 이 조직원에게 적발돼 결국 돈을 다 줬다. 이 조직원은 "이것은 불법이 아닌 어디까지나 사적인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기업형 탈북 지원조직이 10여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당국의 대대적 단속으로 중국동포 밀입국 조직들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국내 조직들이 생겨나 영리 목적으로 제3국을 통해 기획성 입국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경찰청은 최근 중국 여권을 사들여 탈북자의 사진으로 바꿔치는 이른바 '머리갈이'를 한 뒤 1인당 1천만원씩 받고 탈북자들을 입국시켜온 중국 현지 사업가 모씨 등을 적발했다. 이들 조직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가족 중 일부만 입국시킨 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남은 가족을 중국 공안에 신고하겠다고 위협한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중국에서 몽골·라오스·미얀마·베트남 등의 국경을 넘는 루트를 개발,탈북자들을 도운 뒤 1인당 5백만~1천5백만원 가량을 받고 있다.조직당 보통 1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탈북자들은 이같은 방식으로 입국해 정착금을 날리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9년 두만강을 건너 옌볜으로 탈출한 함경남도 출신의 모(여)씨.4인조 조직의 도움으로 중국 위조여권을 갖고 배를 통해 인천으로 입국한 뒤 정착금에서 1천5백만원을 지불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조직은 "중국에 숨어 있는 큰아들(23)을 입국시켜줄테니 2천5백만원을 내라. 돈을 내지 않으면 중국 당국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결국 씨는 이 돈을 송금해 주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 정착금이 국내 적응을 위해 국고에서 지원되는 만큼 입국 비용으로 쓰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들 지원조직이 정부가 못하는 부분을 대신 해주는 측면이 있다"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막을 수도, 권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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