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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파워 소프트 코리아] 2. 10억 투자 때 문화산업은 16명 고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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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렉서스(Lexus)는 명품 차로 통한다. 그러나 부품이 2만개를 넘는 이 최첨단 기계 뭉치가 탄생하는 데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큰 공을 세웠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도요타는 차를 개발하면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을 미국 베벌리힐스와 팔로스버디 같은 부촌(富村)에 보내 상류문화를 마음껏 체험케 했다. "(한국 도요타자동차 정해양 부장)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기호에 맞는 말랑말랑한 소프트 코드를 낱낱이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물을 치밀하게 설계에 반영해 탄생한 작품이 바로 렉서스였다.

한국.일본.중국의 기술은 과연 얼마나 차이 날까. 산업은행은 최근 반도체.철강.자동차 같은 10대 기간산업을 대상으로 3국의 경쟁력을 따져 봤다. 결과는 한국이 100점이라고 했을 때 중국은 76점, 일본은 110점이었다. 한국은 중국보다 3.8년 앞서고, 일본엔 2.2년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문제는'10년 후 한국'이다. 당장 눈앞의 2010년만 봐도 한국 100점, 중국 94점, 일본 102점으로 기술 차이가 종잇장처럼 좁혀질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피 말리는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두 이야기를 묶으면 어떤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기술이라는 딱딱한 뼈대만으론 더 이상 먹고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위에'플러스 알파(+α)'가 얹혀야 생존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디자인.감성.문화콘텐트 같은 '소프트 파워'다.

경영학에선 이미 '소프트 = 성공 키워드'란 등식이 통한다. 차별화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그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무리 복잡해져도 2~3개월이면 얼마든지 '복제'할 수 있고, 결국 소비자들은 '브랜드'나'메이드 인 ~'을 따지게 된다"(한양대 경영학부 홍성태 교수)는 것이다.

무엇보다 20세기 산업 사회에서 21세기 지식정보 사회로 넘어오면서 시장에선 '기계의 논리'가 아닌 '인간 심리의 논리'가 먹혀들고 있다. 폐부(肺腑)를 콕 찌르는 소프트적 매력이 기술력을 누르고 소비자들의 오감(五感)을 먼저 마사지한다.

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학과 이건표 교수는 "기업이'이렇게 만들었으니 알아서 쓰라'고 강요하던 시절은 지났다"고 말했다.

그는"소비자들이 제품에서 의미를 찾고 기호를 부여하는 '스토리(Story) 사회'가 되면서 하드웨어 안에 어떤 문화를 담아내느냐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소프트의 경제학'은 매력적이다. 예컨대 영화.드라마 같은 소프트 산업 자체를 보면 초기 제작.투자비를 빼면 더 들어갈 돈이 별로 없다. 한번 대박이 나면 DVD.캐릭터.리메이크 시장 등에서 줄줄이 돈맥이 터진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한 대 더 만들면 부품비 같은 원가가 그만큼 더 들어간다. 일자리 면에서도 소프트는 돋보인다. "10억원을 투입할 때 유발하는 고용인원이 제조업은 9명뿐이지만 문화산업은 16명(문화콘텐츠진흥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기를 쓰고 소프트 파워를 키우고, 소프트 산업이 발돋움하게끔 인프라를 만들어 주고 있다. 미국에선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의 예상 수익이나 캘빈 클라인의 상표 로열티 같은 '소프트 자산'을 담보로 증권을 발행해 투자자 돈을 끌어모을 수 있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덴마크에선 '메이드 인 덴마크(Made in Denmark)' 대신 아예 '디자인 바이 덴마크(Design by Denmark)'상표를 쓰기도 한다.

한국의 소프트 잠재력도 최근 한류를 포함해 디자인.온라인게임 등 여러 각도에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안재 수석연구원은 "한국인의 감성 속에 담긴 정(情)과 역동성, 집단 놀이문화, 수천년간 쌓인 전통 문화원형 등이 소프트 강국으로 가는 자원"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노재현 문화부장(팀장), 이세정 경제부 차장, 유상철 국제부 차장, 안혜리.정현목.김준술.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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