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호 '또 물집때문에…' 10승투수 물건너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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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박찬호(29·텍사스 레인저스)가 시즌 첫 연승 도전에 실패했다. 박찬호는 7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원정경기에서 3이닝 동안 5안타를 내주며 3실점한 뒤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 마운드를 내려갔다. 레인저스가 2-8로 져 시즌 6패(4승)째를 기록했고 방어율도 7.14로 나빠졌다.

박찬호는 손가락 부상으로 남은 등판일정도 차질을 빚게 됐다. 부상자 명단(DL)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day to day) 상태다. 1997년 시작한 시즌 두자리 승수 행진을 올해까지 이어가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자유계약선수 첫 해, 부푼 기대 속에 출발한 박찬호의 시즌이 이처럼 처참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몸=스프링캠프에서 오른쪽 허벅지를 다친 박찬호는 붕대로 부상부위를 감싼 채 개막전 등판을 강행, 상태가 악화됐다. 그리고 40일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복귀를 준비하던 중 왼쪽 허벅지마저 다쳤다. 5월 13일 복귀했지만 내딛는 발(왼발)의 끝을 채주지 못해 직구 스피드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지난해 허리부상 이후 러닝을 중단했던 박찬호는 이후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러닝을 재개했다. 그리고 나서 "하체에 힘이 붙어간다"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부진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체중은 5㎏이 줄었다. 전성기 때의 몸과 비교한다면 아직 80% 정도다.

◇볼=부실한 하체 탓에 직구 스피드가 눈에 띄게 줄었다. 최고 94마일(1백51㎞)도 한경기에 한두번 찍힐 정도다. 자연히 변화구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커브를 많이 던진다. 커브는 엄지와 중지로 실밥을 잡고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던진다. 커브를 많이 던질수록 중지와 실밥의 마찰이 심해진다. 최근 두번의 등판에서 중지에 물집이 생긴 이유다. 직구 자신감을 찾아 비중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마음=잔뜩 움츠러 있다. 부끄러운 성적과 자신없는 구위, 옮긴 팀에서 첫 시즌을 치르는 낯설음 등이 그 이유다. 그래서 두번이나 삭발했다. 부진할수록 움츠러들고, 움츠러들수록 도망다니는 투구패턴이 반복된다. 볼넷과 몸맞는 공이 유난히 많아진 배경이다. 제1선발과 고액연봉자로서 주위의 기대를 의식하지 않는 평상심, 바뀐 리그와 팀에 대한 치밀한 적응이 숙제다.

◇앞으로=레인저스는 50경기가 남았지만 박찬호의 등판은 많아야 8~9번. 여기서 6승을 기대하긴 힘들다. 6년 연속 10승은 그래서 어렵다.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내년 시즌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몸을 추스르고 리그에 적응하며 구위를 다듬는 등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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