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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대재앙] "한국의사 여기까지 와줘 고마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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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선생님, 이 환자는 가슴이 답답하고 설사를 한답니다."

3일 오전(현지시간) 스리랑카 골 인근 마타라 지역의 이재민 캠프. 스리랑카 현지인 남녀 2명이 어색한 발음으로 한국의 의료진을 돕고 있었다. 2000명이 넘는 이재민의 아우성 속에서도 한국말은 비교적 또렷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파견된 의료지원단 '선한사람들'에서 통역을 돕고 있는 쿠마러(21)와 쿠마리(25.여)로 한국에서 산업 연수생으로 일했던 스리랑카인이다.

스리랑카 남부의 고향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부터 경기도 일산 등지의 공장에서 일해왔다. 지난해 12월 26일 대재앙 이후 가족과 전화통화가 되지 않자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두 사람은 비행기에서 우연히 선한사람들 소속 의료지원단을 만나게 돼 통역을 자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은 지역어인 신할리즈밖에 몰라 의료진이 의사소통에 애를 먹을 것을 안 남매는 무보수로 일하기로 했다. 쿠마러는 "내 고국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선 한국인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선한사람들의 이수훈(의사)씨는 "처방을 통역해주고 문화적 차이도 알려주는 등 의료진에 아주 귀한 존재"라며 두 사람을 칭찬했다.

선한사람들은 지난해 12월 28일 국내 의료봉사단 가운데 가장 먼저 스리랑카에 입국해 활동 중이다. 현재는 이재민 2000여명이 모여 있는 마타라 라할라 고등학교에 세워진 이재민 캠프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고문관은 한국 의료진의 구호활동을 지켜본 뒤 "성공적인 정착"이라고 극찬하며 활동 영역을 확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현지인 의사 랏지는 "한국 의사들의 기술도 기술이지만 열성과 근면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타라에서 굿네이버스 소속의 이교인(의사)씨 등 긴급구호팀 7명은 하루에 300~40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굿네이버스의 김희정 간호사는 "처음엔 무뚝뚝했던 현지 주민들이 한국 의료진의 정성에 고마워하고 있다"며 "이제는 차에 붙은 태극기를 보고 손을 흔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지인인 담당 공무원은 "한국 의료지원단 숫자가 많지 않아 얼마나 버틸까 걱정했는데 쉬지 않고 10시간 이상 환자들을 정성스럽게 돌보는 모습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현지의 의료지원단 관계자들은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는 방역 활동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교인씨는 "응급 상황은 끝났다고 본다"며 "이제부터는 방역 및 복구사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르완다 난민 구호 사업 등에 참여했던 그는 "이번 참사는 다른 재난과 달리 사고 초기에 대부분이 사망해 오히려 중상자는 많지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전염병 예방을 위해 깨끗한 물과 충분한 옷가지, 담요와 칫솔.비누 등 위생용품이 절실하다고 했다. 현재 한국 의료지원단은 연무 소독기 2대로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 연무 소독을 담당한 봉사자가 나타나면 어린이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모여든다. 방역이 시작되면 연기 속을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골에 머물던 기자는 한국 의료지원단과 함께 자동차로 2시간여 걸려 남쪽 마타라로 이동했다. 이 지역은 사망.실종자가 1만5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건물 잔해 및 시신 복구 상황이 골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이다.

마타라(스리랑카)=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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