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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일 욕심 '성공 프로듀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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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도로 위를 느리게 달려가는 옐로 캡(노란 택시), '걷지 마시오(Don't walk)'라는 정지 신호를 무시한 채 바삐 길을 건너는 형형색색의 사람들, "모두 몸의 때를 벗어 던지자"며 달랑 팬티 한장 입은 채 기타를 치는 파격적 행위 예술가…. 미국 뉴욕의 거리는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그리고 그 열기는 '세계의 교차로'라 불리는 브로드웨이 42번가 '타임 스퀘어'에 가까워질수록 최고조에 달한다.

옛날 뉴욕 타임스 사옥이 있던 이곳을 요즘은 유명 TV 방송국들이 점령했다. NBC·ESPN 등 우뚝 솟은 건물의 외관을 타고 시시각각 흐르는 문자뉴스와 광고는 미래사회 속 한 장면처럼 낯설고 흥분된다.

그 중에서도 행인들, 특히 젊은 청년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있다. 1990년대 '뮤직 비디오'라는 신개념의 장르를 들고 나와 전세계 청년들을 흥분시킨 MTV의 모체가 있는 곳, 바로 MTV 본사다.

그런 MTV에도 소위 '잘 나가는' 한국인이 있다. MTV의 해외 프로그램과 쇼의 행사 진행을 총괄하는 박현(38) 팀장이다. 그는 쇼 프로듀서 뿐만 아니라 큰 행사를 기획·진행하는 매니저로서 활약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자랑스럽게 하는 것은 MTV 본사에서 몇 안되는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2층 스튜디오 '미드타운'-그는 '프로듀서'다

스튜디오로 가는 복도의 벽 한쪽에는 수백명의 뮤지션 사진들이 붙어 있다. 바로 '죄수의 사진'이라는 뜻의 '머그 샷(mug shots)'이다. 촬영차 방송국에 들른 스타들의 기괴한 표정을 담은 사진들 속에서 로린 힐·앤 해더웨이·콘 등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사진들을 힐끗 쳐다보며 바쁘게 걸어가는 이 남자, 박 팀장이다. 그가 제작을 맡고 있는 프로그램 '유에스 탑 20 카운트다운(US Top 20 Countdown)' 녹화 상황을 체크하러 가는 길이다. 쉬는 시간 스태프에게 커피를 건네는 건 그의 즐거움이다.

박씨는 한국에서 교교를 졸업한 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가 방송과 인연을 맺은 건 본인도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매사추세츠주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고 직장은 전공과 상관 없는 보험회사였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그에게 어느날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뉴욕의 패션스쿨을 다니던 그녀와 사귀면서 그는 자연스레 뉴욕으로 터전을 옮겼다.

"새 직장을 찾기 위해 신문 구직란을 뒤적였어요. 그런데 눈에 띄는 광고가 있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죠." 뉴욕의 케이블 한인 방송국인 TKC(The Korean Channel)가 제작인원을 뽑는다는 거였다. "일을 하다보니 너무 재밌더군요. 소규모 방송국이라 혼자 섭외하고 취재하고 촬영해야 했는데 그러면서 많은 걸 배우게 됐죠. 스트레스를 받는 만큼 성취감도 컸어요."

'더이상 배울 게 없다.' 3년간 정든 직장도 뒤로 하고 학교로 돌아간 이유였다. 뉴욕공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학위를 받기까지 험난한 생활이 계속됐다.

"2년 동안 일곱번이나 이사했습니다. 뉴욕 외곽의 가난한 동네만 전전하면서 설움도 많았지요. 하지만 부모님에게 손벌리긴 싫었어요." 한국인 특유의 똥고집 때문일까, 고생한 보람이 있었을까, 박씨는 얼마 안돼 맨해튼섬 안의 괜찮은 집으로 이사갈 수 있었다.

#47층 그의 사무실-그는 각종 행사의 '총괄팀장'이다

박씨는 오는 29일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리는 '비디오 뮤직 어워드' 행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비디오 뮤직 어워드'는 지난 1년간 가장 인기있는 가수와 노래를 선정해 시상하는 쇼로 MTV에서 제일 비중있는 행사다. 그가 이 축제를 맡아온 지도 어느새 6년이 됐다. "해외 관계자들을 초청하고 행사를 진행하는 일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 일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한국인이 그런 일을 한다는 걸 알고 놀라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게 좀 서운하지만요."

그는 대학원 졸업 후 96년 MTV에 입사했다. 처음 몇개월간 인턴생활을 할 때 마케팅부·제작부 등 인기 부서 대신 직원 일곱명의 소규모 조직인 국제부를 지원했다.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주목받지 않는 부서에서 주목을 받는 것 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요. 규모가 작은 부서인 만큼 제작·기획·마케팅 등 많은 걸 혼자 처리하는 법을 배웠어요." 예상은 적중했다. 인턴 3개월이 지난 후 회사측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고 이후 호주 MTV 설립을 주도하는 등 굵직한 일을 맡아왔다.

#뉴욕 코리아 타운의 한인 식당-그는 '한국인'이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코리아 타운의 한인 식당을 찾는다. 갈비찜은 그가 단골로 찾는 메뉴다. 어떤 날은 아내와 두 아들을 불러 푸짐하게 먹으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현재 3천여명의 직원이 있는 뉴욕 MTV 본사에서 한국인 직원은 손에 꼽힌다. 그렇기에 더욱 어깨가 무겁다. "처음엔 동양인 남자가 지시하는 것을 마뜩찮아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저를 따르더군요. 이를 악물고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쉽게 무너졌을겁니다."

올해 그의 나이 서른 여덟. 열아홉살에 미국에 왔으니 인생의 반을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보낸 셈이다. 열심히 노력하며 지낸 덕분에 어느 정도 '성공'이라는 열매도 거머쥐게 됐다.

"능력만 가지곤 안됩니다. 기회를 포착해야죠.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작은 데서부터 시작한 게 성공의 원인이었달까요.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도 이곳 MTV 본사에서 얼마든지 일할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지세요!"

뉴욕=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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