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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도… 연기도… "프로끼린 통해요"<첫 골프 드라마 '라이벌'로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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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지난달 29일 경기도 가평의 리츠칼튼 컨트리클럽. 언덕 너머로 활짝 펼쳐진, 초록빛물 잔뜩 오른 잔디밭은 가슴마저 시원하게 적셔내는 듯하다. 카트(이동용 전기차)를 타고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언덕 위에서는 휴장일을 이용한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다.

"거기 서지 못해요. 이렇게 모래를 뿌리고 가면 어떡해요. 한 대만 맞고 가란 말이에욧." 극중 가난한 캐디 정다인(소유진 분)이 주인공 민태훈(김주혁 분)을 쫓아 달려간다. 이들이 농탕치는 모습을 내려다보던 골프계 요정 정채연(김민정 분)의 눈은 질투로 이글거린다.

"컷! 유진이 좀 더 뱅글뱅글 돌아봐!" 이미 햇볕에 검게 그을린 이창한 PD의 목소리가 매섭다.

서로 앙숙인 두 주인공 역을 맡은 소유진(21)과 김민정(20)의 골프실력 점검(?)을 위해 이날 골프장에 나타난 사람은 올해 경력 6년차의 여성 프로골퍼 홍희선(31)씨. 진짜 선수가 왔다는 얘기에 소유진과 김민정은 반가워하며 "제대로 된 폼 좀 가르쳐달라"고 했다. 홍씨는 "퍼팅을 할땐 팔을 자연스럽게 펴고 눈은 공 바로 위를 보면서 상체를 숙여야 예쁜 포즈가 나온다"며 일일이 자세를 바로잡아 준다. 잔디밭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마치 오랜만에 큰 언니를 만난 자매들처럼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홍희선:원래 골프를 좀 쳤나요.

김민정:아뇨. 전 전혀 못치구요, 유진 언니는 잠깐 쳐봤대요.

소유진:다 잊어버렸어요. 레슨을 충분히 받아 손에 익혀서 출연하고 싶은데 정말 시간이 없어 아쉬워요.

홍:그럼 실제로 치는 장면은 어떻게 해요?

소:제가 할 때도 있고 대역이 할 때도 있고. 한번은 감독님이 가발을 쓰고 한 적도 있어요. 하하.

홍:어떤 드라마예요?

소:아무 것도 가진 게 없고 정말 꿈만 가진 소녀가 골프여왕이 되는 얘기예요. 바닷가에서 샌드 웨지(골프 채의 한 종류) 하나로 혼자 연습하다가 사촌 오빠의 빚을 갚기 위해 선수가 되죠.

홍:일본 만화와 비슷하다고 하던데.

김:우라사와 나오키의 '해피'요. 내용이 비슷해서 아예 판권을 샀대요. 테니스에서 골프가 된 거죠. 그런데 만화보다 드라마가 더 재미있는 같아요. 보통 대본이 나오면 내 부분만 보는데 이번엔 다 읽게 되더라구요.

홍:원래 서로 친했나요?

소:연기를 같이 한 건 이 드라마가 처음이에요. 민정이가 방송경력이 오래됐다고 해서 '좀 찌든 애겠거니'했는데 얘기해 보니 전혀 아니더라구요.

김:뭐야, 정말 그렇게 생각했단 말야? 저도 처음엔 언니가 좀 쌀쌀맞아 보였는데 얘기를 좀 해보니 둘이 너무 통하는 거 있죠. 어디 모여 수다 좀 떨고 싶은데 서로 스케줄이 달라 그럴 시간이 없는 게 참 안타까워요.

소:연기지만 골프를 하다 보면 좀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실제로는 어때요.

홍:맞아요. 자기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거든요. 이기주의자가 안되려고 노력 중이에요.

김:그래도 재미는 있죠?

홍:처음엔 한 5년 치면 정말 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고요.

소:어떤 선수가 되고 싶으세요?

홍:패배를 인정할 줄 알고 남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이죠. 그런 사람이 진정한 프로선수 아닐까요.

홍선수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틴컵'을 본 느낌을 들려주었다. 만화처럼 황당한 장면도 많이 나오지만 그런 장면들 때문에 오히려 골프에 대한 친근감이 생겼을 것이라면서. 그는 골프 선수들이 이 드라마로 인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 감독님이 빨리 올라오래요. 언니 덕분에 실감나는 모습 보여드릴 수 있게 됐네요. 언니도 좋은 경기 보여주세요. 안녕~."

두 연기자는 백마같은, 하얀 카트를 타고 다시 오솔길로 올라갔다.

가평=정형모 기자·사진=오종택 기자

대중 앞에서 골프 얘기를 하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3일 시작된 SBS 새 주말드라마 '라이벌'(연출 이창한·극본 진수완) 이 그 금기에 슬쩍 도전장을 냈다. 가난한 집 딸과 부잣집 딸의 숙명적 대결을 내세우면서. 국내 최초의 골프 드라마는 그렇게 시작됐다.

< 소유진 >2000년 드라마 '루키'(SBS)로 데뷔. '맛있는 청혼'(MBC)·'쿨'(KBS)·'여우와 솜사탕'(MBC)에 연이어 출연하며 신세대 연기자로 급부상. 애니메이션 '런딤'에서 목소리 연기도 했다. 현재 MBC 생방송 연예프로그램 '섹션TV 연예통신'을 진행하면서 영화 '2424'도 촬영 중이다. 동국대 연극영상학부 3학년.

<홍희선>초등학교 시절 설장고로 아시아민속경연대회 대상을 받고 MBC 어린이합창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홍씨는 캐나다 위니펙대 경영학과 유학 중 골프에 빠져 진로를 변경한 늦깎이 선수. 채를 잡은 지 8개월 만에 국내 세미프로 테스트에 합격한 뒤 97년 겨울 프로에 입단했다. 경희대 골프경영학과 2학년에 다니며 선수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김민정>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SBS)와 '왕과 비'(KBS) 등에 출연했다. 올 초 개봉된 영화 '버스, 정류장'과 지난 5월 방영된 MBC 뮤지컬드라마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이유에 대한 상상'에서 주연을 맡았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휴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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