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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이러면 한국 안 좋아” 韓 “우리가 판단할 문제”

중앙일보

입력

“중국의 외교 행태는 거칠었다. 수교 후 18년간 쌓은 교역 규모 1400억 달러,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실체가 무엇인지 되묻게 했다.” 한 고위 외교관의 얘기다. 천안함 피격 이후 북한의 도발을 규탄·응징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넉 달째 계속된 대중국 외교의 현장은 분노에 가깝다. 유엔 안보리의 성명 채택 과정은 물론, 북한 잠수함의 침투를 대비하기 위해 검토한 서해 한·미 합동 훈련 문제에서 중국은 21세기 외교 무대에서 보기 어려운 행태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던 외교관들은 “우리가 ‘가겠다’고 하면 ‘오지 마라’, ‘오라’고 하면 ‘안 가겠다’고 했다.” “주중 류우익 대사의 면담 신청은 아예 묵살됐다.”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해 ‘설명하겠다’고 하면 ‘안 듣겠다’는 식의 막무가내였다”고 전한다. 중국은 실체적 진실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외교전이 가열되면서 중국은 충고식 태도로 일관했다. 한 외교관에 따르면 협의 과정에서 중국은 “한번의 불행이 또 한번의 불행을 부를 수 있다. 한국이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가 대 국가의 외교 어법에선 있을 수 없는 언급”이라고 했다.

서해의 한·미 합동 훈련을 둘러싼 모습은 더 심했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 언론에 보도된 검토 내용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다섯 차례나 성명을 냈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한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이해와 협력 없이는 일보도 내디디기 힘들 것”이라고 협박했다.

유엔 안보리 성명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일방 두둔했던 중국은 서해 훈련과 관련, 한국측에 “이렇게 하면 한국을 위해 안 좋다”고 발언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 때문에 ‘좋고 안 좋고는 한국이 판단할 일이다. 중국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는 논쟁까지 벌어졌다”고 소개했다. 중국이 제3국과 대화하면서 ‘미국만 없었으면 한국은 진작에 손봤을 나라’라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는 말이 있다.

한 외교관은 서해 훈련과 관련, “중국 측은 ‘서해엔 공해가 없다’는 발언까지 했다”고 전했다. 서해를 중국의 내해로 본다는 논리다. 정부 소식통은 “공해에서의 항해의 자유는 국제 해양질서를 유지하는 근본”이라며 “12해리 밖은 공해”라고 강조했다. 한 외교관은 “중국이 커지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동안 화평굴기론을 펴면서 평화로운 중국의 부상을 대내외에 표방해 온 중국이 이번 천안함 외교전 과정에서 ‘중국 위협론’의 실체를 각인시켰다”고 말했다. 한 외교관은 “중국에겐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징표인 가치외교는 아예 없었고 ‘우리가 컸으니 대접받아야 한다’는 오만함만 보였다”고 했다.

이번 천안함을 통해 국제사회 힘의 축이 중국과 미국 중심으로 변화한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도 애초부터 미국과의 파워게임만을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풀어갔다는 것이다. 지난달 이란 제재 결의안을 낼 때도, 이스라엘군의 가자 지역 구호선 규탄 문제에서도 미국의 주상대는 중국이었다. 외교 소식통은 “냉전 이후까지도 미국의 대립축이었던 옛 소련(러시아)의 자리를 중국이 차지한 현실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천안함 외교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 내에선 ‘향후 북한의 급변 사태와 북핵 문제 등에서 중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확연히 드러난 만큼 어떻게 전략적인 대처를 할 지 재점검해야 한다’는 기류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이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나 심지어 경유조차 허용하지 않으면서 중국의 입장을 고분고분 들어준 것이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내부 자성도 일고 있다. 고위 소식통은 “우리는 과거 종주국 노릇을 했던 중국을 잊고 50~70년대 가난하고 약했던 중국만을 기억하고 있었다”며 “이번 사태는 중국의 힘이 발현되면 우리 안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수정 (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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