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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파멸 부르는 파괴 본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문단의 기인으로 통하는 소설가 이외수가 『황금비늘』 출간 이후 5년 만에 두권짜리 장편소설을 펴냈다. 집필에 3년7개월이 걸렸다는 설명처럼 이 소설은 꽤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 화자(話者)를 바꿔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론 스토리의 중심축은 주인공 전진철의 일대기에 맞춰져 있다.

한편의 모자이크가 완성되듯 소설이 끝나갈 무렵 작품은 서서히 윤곽이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난 모자이크 그림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내면에 가득한 파괴적 본능이 어떻게 표출되는가, 그리고 이 파괴적 본능이 어떻게 파멸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 점이다.

주인공 전진철은 도벽·방화 충동·폭력·섹스·살인 충동에 사로잡힌 부정적 인물. 이같은 그의 충동적 기질은 하나가 사라지면 하나가 다시 생성되는 악순환을 띠고 있는데, 작가는 그것을 전생의 억울함을 복수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한다. 이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이런 내면의 '괴물'이 현실세계와 만나면서 벌이는 온갖 패악을 재미있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그런 온갖 나쁜짓은 후반부에 주인공이 독침 연쇄 살인사건을 일으킨다는 내용으로 집중되면서 재미난 읽을거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 선정적 주간지 등에서 봤음직한 여러가지 말초적 사건들, 이를테면 가짜 영화감독의 여배우 지망생 농락사건 등을 심심치 않게 끼워넣고 있다.

주인공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인물은 상당히 희극적이다. 그의 직업은 자장면 배달원. 하얀솔개라는 의로운 자장면 배달원에게서 배달 정신, 즉 '3분 안에 배달하는 것이 배달원의 존재 의미'라는 직업 가치를 배운다. 주인공이 독침을 쏘고 배달원이 철가방으로 막는 마지막 부분의 '결투'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실소가 나오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외수 소설의 어떤 가벼운 유희적 경향을 대표하는 것 같다. 또 그 뒤의 마지막 장에서 범죄에 관해 고담준론을 펼친다거나 소설 곳곳에 잠언적이고 명상적인 경구를 삽입한 데서도 이외수 소설의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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