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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상영 논란 확산 '죽어도 좋아' 박진표 감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지난 5월 칸영화제에 출품돼 주목을 받았던 박진표(36)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가 암초를 만났다. 지난달 22일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 소위원회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것. 영등위는 7분간에 걸친 성기 노출과 구강 성교가 일반인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해석했다. 이는 박감독이 걱정한 그대로였다.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70대 부부의 사랑을 그린 영화에 평단의 갈채가 쏟아졌으나 정작 감독 본인은 노부부의 성을 여과없이 노출시킨 이번 실험이 과연 영등위를 통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번 결정을 놓고 영화계 내외에서 반발이 일었다. 영화인회의·문화개혁시민연대·독립영화협회·젊은감독들의모임 등에서 "영등위의 판정은 창작자에 대한 폭력이다""영등위는 재심의를 진행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젊은영화비평집단은 31일 토론회를 개최했고, 영화인회의가 주재하는 공청회도 다음주 열린다. 제작사 측은 다음주 말 재심의를 신청할 계획이다. 논란의 진앙지인 박감독과 대면했다.

-영등위 판정은 예견된 일이다.

"그렇다. 그럼에도 당황스럽고, 서운하고, 무척 힘들다. 촬영하면서도 논란을 예상했다. 그러나 이토록 '뜨거운 감자'가 될지는 몰랐다."

-이번 판정은 한국 사회의 상식을 대변한다. 감독이 앞서 나간 것 아닌가.

"인정한다. 성기 노출은 성인용 비디오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영화의 진심이 등급위원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김수용 위원장이 한 잡지의 인터뷰에서 앞으론 성기 노출을 심의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고 말해 내심 기대가 컸다."

-영화의 진심이 뭔가.

"어찌됐든 대한민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사실 관객들을 놀래 주고 싶었다. 70대 노인도 저렇게 사랑할 수 있구나, 우리 부모 혹은 옆집 할머니도 저렇게 살 수 있구나 하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 젊은이 못지 않게 노인에게도 사랑과 섹스, 그리고 애무는 그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실제 장면을 노출할 필요까지 있을까.

"그렇게까지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단언컨대 영화 장면 중 필요하지 않는 건 하나도 없다. 모든 장면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논할 자리가 아니라고 본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찍으려고 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허구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지만, 이번 작품은 진짜를 진짜로 찍은 것이다."

-신인 감독의 돌출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물론 데뷔작이다. 그러나 방송사 PD로 11년간 근무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다. 그만큼의 세월을 기다려온 것이다. 두번째 작품이었다면 나도 어떻게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영등위는 국민 정서를 고려했다고 했다.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만약 그렇다면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영화가 어떻게 상영될 수 있는가. 영화 속의 부부를 흉내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 가운데 90% 이상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찜질방에 모인 할머니들도 이 영화를 알고 있더라. 그만큼 시대가 많이 변했다."

-영등위 안에서도 찬반이 팽팽했는데….

"4대4로 대립했다가 소위원장(유수열)의 직권으로 제한상영가를 받은 것으로 들었다. 감독으로서 고무적인 일이다. 재심의에선 첫번 심의에 참가한 사람을 빼고 15명이 참여한다. 좋은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제한상영가 영화는 있고 이를 상영하는 극장이 없는 모순은 어떻게 보나.

"그런 극장이 있었다면 제한상영가 작품 1호로 틀었을지 모른다. 그게 현재의 솔직한 느낌이다."

-영화인의 지지가 뜨겁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현승·박찬욱·허진호 등 선배 감독들의 성원이 힘이 된다. 영화가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을 예상했으나 외로운 감자가 되는 건 원치 않았다."

-모자이크 처리 등 제작사의 수정 제의는 없었나.

"아직은 없다. 또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이제 영화는 내 손을 떠난 것 같다. 만약 영화를 손질한다면 지금까지 지원해온 영화인에게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정말 관객의 냉정한 판단을 받고 싶다. 그래도 안되면 영화제에 기댈 수밖에 없다. 토론토·밴쿠버·런던 등에서 이미 초청받았다."

-후속작에 대한 부담이 크겠다.

"아니다. 오히려 후련하다. 다음에는 조용히 찍을 것 같다. 30대 샐러리맨이 살아가는, 즉 평범한 가장의 일상을 다룬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글=박정호,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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