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이 학위 브로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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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패방지위원회는 현직 국립대 총장이 러시아 특정 대학의 박사학위를 받도록 알선해주고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아직 당사자 조사가 안됐고 본인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앞으로 검찰 조사에서 일부라도 사실로 드러나면 우리 교육계에 미칠 충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패방지위원회의 수사 의뢰 내용을 보면 이 총장이 알선한 25명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학위 과정을 이수하지 않고 1년에 6~7일 러시아 현지에 다녀온 것만으로 학위를 받았다. 이들이 '유령' 또는 '부실'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더구나 이 총장은 최근 5년간 학위 취득 희망자 한 사람당 3천만~4천만원씩, 모두 7억원을 받았다고 하니 '학위 브로커'라는 의심을 받을 만하게 돼 있다.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사자인 총장이 한 일은 범법행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비난을 받아야 한다. 아무리 총장이 되기 전의 일이라지만 이런 대학의 책임자에게 누가 권위와 존경을 보내겠는가. 또 이렇게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상당수가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니 그 교육의 질이 보장될 리 없다.

감독기관인 교육인적자원부도 문제가 있다. 부실하게 받은 박사학위가 아무런 검증장치 없이 정식 박사로 등록된 것은 이해가 안된다. 또 지난 4월 이 총장 임명과정에서 이 문제가 제기됐으나 '사실무근'이란 당사자의 소명만 듣고 끝냈으니 의혹을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 부패방지위원회가 출범 후 첫 작품으로 전·현직 고위 공직자 세명을 고발했다가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된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당사자의 명예를 위해 수사는 의뢰하되 혐의 내용을 발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다. 어쨌든 이제 검찰로 공이 넘어간 이상 엄정히 수사해 비리혐의가 밝혀지면 교육계의 환부를 드러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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