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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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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대 중국의 경전 '주역(周易)'에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는 말이 나온다. 가을철 표범이 털갈이를 해 화사하게 변하는 것처럼 군자는 신속하게 자기 변혁을 한다는 뜻이다. 표범이 털을 갈고 가죽의 아름다움을 더하듯 군자는 세상을 혁신해 잘못된 구습을 고쳐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군자는 근본적인 변혁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표범보다 더 강한 동물인 호랑이를 빗댄 표현도 있다. 바로 '호변(虎變)'이다. '군자는 표변하고 대인(大人)은 호변한다'고 했다. 군자 위에 대인이, 표범 위에 호랑이가 있다는 중국인들의 생각이 반영된 말이다. 둘 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강조한 표현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표변'이라고 하면 마음이나 행동을 순식간에 바꾼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바뀌게 된 경위는 불분명하다. 초심을 버리는 변심 행위 자체를 좋지 않게 보는 유교적 정서 때문에 '표변'에 그런 낙인이 찍힌 듯하다. 그래서 역대 정치인들이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변절들은 대개 '표변'으로 비난받곤 했다.

일본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뜻으로만 써왔다. 이에 비해 중국에선 '표변'이 나쁜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다고 한다. 당나라 시절 가난하고 미천한 계층에서 태어나 입신양명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도 병용됐을 뿐이다.

변화가 심하고 갈등과 대립이 격해질수록 '표변'도 늘어나는 것일까. 정치에선 '내가 하면 소신, 남이 하면 표변'이라는 식의 언동이 사라지지 않는다. 비교적 논리가 통할 법한 경제에서도 그렇다. 경제엔 문제가 없으며 언론이 떠들어 불안해진다고 하다가 경기부양책을 발표하거나 저성장 전망을 내놓는다. 금리를 안 내릴 듯 하면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새해엔 '주역'에 나온 본래 의미의 표변을 해보면 어떨까. 대립과 갈등에서 대화와 상생으로 멋지게 표변해보자는 얘기다. 또 분배냐, 성장이냐 하며 불필요한 논란을 접고 대통령의 말대로 동반성장으로 표변하는 것도 멋진 일이 될 것이다. 누가 아나, 훗날 2005년을 '호변의 해'로 기록해줄지.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