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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지금'연극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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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유럽의 여름은 축제로 시작해 축제로 끝난다. 테크노에서 정통 연극까지,웬만한 도시들은 각양각색의 공연을 즐기려는 축제 인파로 넘실댄다. 이 가운데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7월 5~27일)과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8월 2~26일)은 유럽 여름 축제의 대표격이다.

올 아비뇽 페스티벌에는 개막 공연인 안톤 체호프의 연극 '플라토노프'를 비롯해 7백여개의 각종 작품(오프 포함)이 무대에 올랐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전세계에서 온 6백여개의 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곧 막을 올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축제들은 '그들만의 잔치'였다. 그러나 1999년 '난타'가 에든버러에 진출하면서 이젠 '우리의 축제'가 돼가고 있다. 올해에도 타악 퍼포먼스 '두드락''태권 다이아몬드'가 참가한다. 아비뇽에는 연극 '동방의 햄릿'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가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비상업 예술의 성지(聖地) 아비뇽 축제=올해는 그동안 끊이지 않던 상업화 논란을 잠재웠다는 평이다. 실험적인 작품을 배려하고,프랑스 연출가 외에 동·서부 유럽의 연출가들의 작품을 많이 선보인 것이 그 예다. 프랑스 공연잡지 '엥로큐티블'은 '유럽의 열린 무대'라는 제목으로 이런 변화를 집중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옛 식민주의 시대의 유물이지만,유럽문화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아랍권 연출가의 작품과 아프리카를 주제로 한 작품들 또한 이런 변화의 촉매였다.

튀니지의 파뎀 자이비가 연출한 '광기',프랑스와 세네갈 예술가들이 공동 작업한 '밤의 어린이들'이 특히 주목을 끌었다.

올해 최대 관심작 가운데 하나는 전회 매진을 기록한 캐나다 연출가 데이비드 말로의 '장님들'이었다. 섬에 갇힌 열두명의 장님들이 숲에서 돌아오지 않는 그들의 가이드를 기다리는 극한의 상황을 담은 악몽 같은 이야기다.

이 장님들에게 자연의 소리는 공포이며,낮과 밤이라는 시간의 전통적인 구분도 무의미했다. 내용 못지 않게, 모든 등장인물이 공중에 투사된 이미지로 보이는 표현기법 또한 다분히 실험적이었다.

'밤의 어린이들'은 세네갈 부랑아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 불평등을 예술적인 시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설치 미술 형태인 이 작품은 부랑아들의 옷 냄새로 1,2층 전시장을 메웠다. 관객들은 조명 없는 어두운 미로를 회중전등을 들고 다니며 더듬듯이 공연을 봐야 했다. 시각·청각 외에 촉각·후각을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었다.

이탈리아의 중견 연출가 핍포 델보노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델보노는 영화 '자전거 도둑'의 감독 빅토리아 데 시카처럼 직업 배우가 아닌 사람들, 그중 몸의 형태가 특이한 사람들을 배우로 썼는데 그들의 몸을 극 안에서 아름답게 보이도록 연출했다.

무용에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30대 독일 안무가 사샤 발츠의 'NoBody'가 돋보였다. 이 작품에는 한국인 무용가 강수미씨와 스웨덴 국적의 한국 입양아 출신 무용가 요하킴 나비 올손도 출연했다.

한편 일간지 '라 프로방스'는 아비뇽 오프에 참가한 극단 노뜰(대표 원영오)의 '동방의 햄릿'에 대해 "만인 공통의 무대언어인 춤으로 보여지는 정제된 동작들이 음악처럼 언어의 장벽을 제거했다"고 호평했으며 이 작품은 현재 유럽의 에이전트와 극장의 프로포즈를 받고 있다.

◇세계 으뜸의 공연마켓 에든버러 축제=에든버러는 전통적으로 예술의 상업화를 돕는 마당 구실을 해왔다. 축제 기간 중엔 세계적인 흥행사(임프레사리오) 수백명이 이곳을 찾는다.

'난타'의 성공신화가 시작된 곳도 이곳이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공식 참가작과 프린지로 나뉘는데 프로듀서들이 개별 극단을 초청해 이뤄지는 프린지가 뭐니뭐니해도 페스티벌의 꽃이다.

올 프린지 참가작 가운데는 미국의 영화 배우 팀 로빈스와 수전 서랜던 부부가 같은 무대에 서는 '더 가이스', 신데렐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동화를 패러디한 '바비 공주와 레슬러' 등이 화제작으로 꼽힌다. 유럽 작품 일색의 아비뇽과 달리 마크 트웨인의 '큰 강', 미국 남부 지방의 유대인 이야기를 다룬 '발리후의 마지막 밤' 등 미국 작품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한국적 장단과 로큰롤 등 서양의 비트를 믹스한 난버벌 퍼포먼스 '두드락'(대표 최익환)도 참가한다. '난타''도깨비 스톰'에 이은 경사다. 공식 초청작은 아니지만 에든버러시 4대 극장 중 하나인 게이트웨이에서 공연한다. 상당히 좋은 조건이다.

공연예술을 국제 무대에 홍보·배급하는 영국의 유니버설아츠와 정식 계약해 진출하는 것이다. '두드락'은 에든버러 공연을 계기로 세계 무대 진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난버벌 퍼포먼스의 코미디·연극적 요소보다 음악성을 지향하는 작품으로 사물놀이 등 전통악기와 각종 개량 악기 등을 이용한다.

정수진

<파리 3대학 박사과정·연극이론 전공>

정리=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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