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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상영가' 등급은 검열의 부활 아닌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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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70대 노인 부부의 사랑과 성생활을 다룬 박진표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가 23일 열린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의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관계기사 40면>

영등위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긴 것은 지난 1월 개정 영화진흥법이 발효된 이래 5월 북한의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의 쌍붙기'에 이어 두번째다.

국내에는 아직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을 경우 극장 개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제한상영관은 일반 영화를 함께 상영할 수 없고 비디오 출시도 금지돼 선뜻 운영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죽어도 좋아'의 선택은 두 갈래다. 하나는 30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가 된 노인 부부의 구강 성교와 성기 노출 장면 등을 잘라내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해 새로 등급 분류 신청을 하는 것이다.

아직 제작사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진 않았지만, 박감독이 "극장 상영을 위해 필름을 자를 생각은 전혀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라 '죽어도 좋아'의 일반 상영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5월 제55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됐던 '죽어도 좋아'는 '문제의 장면' 때문에 등급 판정 여부를 둘러싸고 일찌감치 영화계의 관심사가 돼왔다.

제한상영관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기는 것은 사실상 '검열의 부활'이라는 인식이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는 '등급 보류'조항을 없앤 개정된 영화진흥법의 취지와도 빗나간다는 게 영화계의 중론이다.

게다가 김수용 위원장은 지난달 유임된 뒤 한 영화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죽어도 좋아'의 등급 문제를 거론하자 "단순히 성기가 노출됐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예전의 기준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답변해 영등위의 결정이 좀더 유연해지지 않을까 하는 데 기대가 모아지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는 '역시나'다. 예술적 표현에 대한 폭넓은 이해보다는 가위질을 부추기는 쪽으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성기나 체모만 노출되면 '어마 뜨거라' 하고 무조건 대중이 봐서는 안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시각이다. 검열 때문에 정사 장면을 천둥·번개가 치거나 물레방아 도는 장면으로 대체하던 시절은 지났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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