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는 선사(禪師)의 설법(說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한용운(1879~1944)'선사의 설법' 중

만해(卍海)의 시를 읽고 나면 '워털루 브리지'나 '카사블랑카'를 보고 난 느낌이다. 주인공의 얘기가 내 마음 속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옮겨져 와서 한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한용운은 '사랑의 극장'이다. 눈밝은 관객 몇사람만 들어도 '님의 침묵'은 필름이 닳도록 돌아갈 것이다. 그림자 같아서 끊을 수 없는 사랑.

윤제림<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