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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6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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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내가 대인 관계에서나 사물에 대해서나 어딘지 건성인 것 같기도 하고, 비켜서서 무심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버릇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손오공이 구레나룻 털을 한 움큼 뜯어서 훅 불면 똑같이 생긴 원숭이들이 사방에 나타나는 것처럼 나는 나를 만들어서 남에게 보여줄 수가 있었다. 피란 시절에 '서울내기 다마내기'라고 경상도 아이들이 피란민학교 아이들을 놀려 먹었지만, 청소년 때에는 상급생인 신우석이가 눈을 반짝이며 '너는 날 못 속인다. 너는 십일면관음이야' 하던 말도 생각난다. 하지만 나는 양파도 십일면관음도 아니고, 서로 진심으로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겁쟁이였다. 그러므로 내가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모습은 그가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서 지어낸 모습이다. 또는 그가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을 지어내어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나는 스스로 상처 받지 않으려고 방어하는 셈이다.

나는 어려서 혼자 중얼거리며 놀았고 여러 인물로 분장한 모습들을 거울 속에서 만나며 역시 혼자 놀았다. 혼자 숨어서 책을 읽고 그것을 말하지 않고 몰래 간직했다. 집에는 어머니 큰누나 작은누나 그리고 어린 남동생이 있을 뿐이어서 그 누구와도 길게 말을 나누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학교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받았다. 조퇴를 하고 혼자 전차를 타고 오는데 한강다리를 건너다가 울음이 나왔다. 아버지가 가엾었기 때문이다. 그는 살림을 모두 회복해 놓지는 못했지만 우리 형제가 학교에 다닐 만큼은 겨우 준비를 해놓았다. 그는 지쳐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나는 그날 중학교 운동장에서 보았던 아버지 눈 속의 가득했던 물기를 기억했다. 자기 연민과 식구들에 대한 책임감이 불안하게 엇갈리는 그런 순간이었겠지.

그런 것을 알고있던 내가 막상 상가가 되어버린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속없는 철딱서니로 돌아갈 작정을 한다. 슬픔이니, 감정의 표현이니, 어머니를 비롯한 누나들, 여자들의 애도하는 정서에 동조하기가 번거롭고 귀찮고 쑥스럽다. 동네 아주머니와 몇 안 되는 친척들이 모여서 음식도 준비하고 상복도 짓고 있었다. 나는 삼베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와 굴건까지 썼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었다. 안방에 입관된 아버지의 관이 놓이고 병풍을 쳤는데 조문하러 오는 손님들을 내가 그 앞에 앉아서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깐 사이에 좀이 쑤셔서 나는 뒤란에 나가 해주 이모네 사촌 아이들과 함께 전이나 고기붙이를 주워먹으며 지분거리고 놀았다. 아니면 현관 앞 길에까지 나가서 두루마기 소매에 넣어 내간 떡을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웃고 떠들며 이야기했다. 상복만 아니라면 나야말로 잔칫집 도련님이 된 셈이었다. 어머니는 그 일이 섭섭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두고두고 얘기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의 그때 좌절감을 잘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초상집 분위기에 대한 저항에 관해서도 이해할 수 없었겠지.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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