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잃은 대통령… 청와대 침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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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0일 오전 관저에서 차남 홍업(弘業)씨의 기소내용을 보고받았다. 이재신(載侁)민정수석에게서다.金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이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 분위기도 무거웠다.한 관계자는 "일이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였지"라고 자탄했다. 홍업씨가 작고한 정주영(鄭周永)씨에게서 매월 거액을 받고, 전·현직 국정원장에게서도 돈을 타 썼다는 점이 민심을 크게 악화시킬 것을 염려했다. 고위 관계자는 "홍업씨에게 적용된 조세포탈 혐의는 최고 징역 15년의 중범죄"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관계자는 "신경써야 할 일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으니…"라며 괴로워했다. 검찰에 대한 감정의 앙금도 드러냈다. 다른 관계자는 "검찰이 홍업씨가 돈을 감춘 곳까지 시시콜콜 공개하는 등 다 털었으면서 무슨 청와대의 압력을 받았다고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박지원(朴智元)비서실장은 민정수석의 대통령 보고가 끝난 뒤 긴급회의를 했다. 김진표(金振杓)정책기획·조순용(趙淳容)정무·이재신 민정·박선숙(朴仙淑)공보수석이 참석했다. 회의를 마치고 대변인인 朴수석이 청와대의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내용은 사과와 함께 엄정한 처리를 다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청와대도 이같은 수준의 조치로 일이 해결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金대통령이 즉각 사과하는 것도 청와대 입장에서는 내용이나 모양이 참담하다.金대통령은 홍업씨와 3남 홍걸(弘傑)씨 구속 때 각각 대국민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단 청와대의 입장표명 형식으로 대변인이 사과를 하고, 金대통령은 15일로 예정된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진솔하게 심경을 밝히고 사과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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