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생각 뉴스에 비친 2004] 불황의 한숨 속 나눔의 기쁨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뉴스를 되새김질해 세상을 음미하는 ‘생각뉴스’에 비친 2004년 한국사회는 한 마디로 어두웠다.서민의 허리를 휘게 만든 경제난·취업난 속에 정치계는 싸움과 부정으로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줬다.대규모 입시부정 등 부끄러운 모습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따뜻한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고 ‘골든벨 소녀’ 지관순양 같은 희망 비둘기가 나타나 국민들의 언 가슴을 녹여줬다.(이하 따옴표 안은 생각뉴스 내용,괄호 안은 게재일자)

◆ 경제난 속에서도 희망을=생각뉴스에는 거의 매달 경제난에 시달리는 서민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10월 들어 올해 5% 경제성장은커녕 4%도 힘들지 않겠느냐는 일부 전망이 발표되자 "희망만은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이… 머나먼 노스탤지어는 아니겠지요"(10월 15일)라는 간절한 갈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1월 국정 최고책임자가 경제 상황을 '특별한 불경기'라고 표현한 직후엔 "아빠 힘내세요"(11월 9일) 등 서로를 격려하는 내용이 등장했다.

한국 사회는 취업난 속에 노점상으로 나서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원대하리라는 믿음을 갖고서"(11월 6일)라며 희망만은 결코 버리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한 탕에 몰두하는 건강하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올 상반기 인터넷 사이트가 집계한 최고 인기 검색어가 '로또'로 나오자 생각뉴스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꿈은 로또가 가져올 인생역전"(6월 28일)이라고 한탄했다.

불경기 속에 "웰빙, 올해 우리 삶이 영화라면 이 말은 배경음악일 겁니다"(11월 17일)라는 외침이 나올 정도로 한국 사회가 '웰빙'바람을 타자 생각뉴스는 "서로의 고픈 가슴을 채워주는 영혼 웰빙"을 제창하기도 했다.

◆ 정치에 실망=정치분야에선 불법 정치자금이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생각뉴스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 국민이 듣고 싶은 한 마디. 내 탓이오"(3월 27일)라며 정치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4.15 총선으로 국회의 다수당이 바뀌는 변화 속에서도 "세상을 바꾼다지만 정치인을 바꾼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4월 19일)라는 냉소적인 전망을 하기도 했다.

국회는 타협보다 치고받기에 더 열중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 "따라야 할 진짜 주인은 대한민국 법과 국민"(7월 9일)이라는 원칙론을 새삼 강조해야 할 정도였다.

◆ 춤추는 교육=2004년 교육분야는 그야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10월 이른바 교육등급제 파동 속에서도 "교육은 희망이라고 그 믿음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10월 27일)라는 분위기였지만 12월 초 수능 부정이 발각되자 사람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극소수 수험생이… 모로 가도 서울만 가자며 성적과 양심을 맞바꾸다 줄줄이 쇠고랑 찼죠"(12월 2일)라고 분노했으며 "시험부정을 내다보지 못한 어두운 눈을 탓할 뿐"이라며 학벌만능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 끔찍한 범죄=이상성격으로 여성과 부자를 증오하던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검거되자 "무관심이 나를 향한 칼날이 될 수 있다"(7월 20일)며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사회악이 독버섯처럼 피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울림이 나왔다. 경찰이 범죄자 유전은행 정보를 만든다는 소식이 들리자 "상식이라고 알고 있던 일들이 워낙 헛갈리는 요즈음"(7월 20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12월 들어 유영철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눈에는 눈을 내밀어야 할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어야 할지"(12월 15일)라며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회의 움직임과 상충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그래도 나눔이 있는 한국 사회=문밖이 아무리 차가워도 남을 감싸는 따뜻한 손길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다. 올해는 한국 나눔문화가 본격화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서울 뚝섬에 아름다운 나눔장터가 상설로 열리면서 "애물단지가 보물단지가 되는 세상, 나눔의 마법이 펼쳐지는 곳이다"(4월 17일)라는 아름다운 외침이 나왔다. 나눔의 따뜻한 손은 휴전선도 넘었다. 4월 평안북도 용천에 대형 폭발사고가 나자 "휴전선 너머의 일이라고 우리의 마음 씀씀이가 가난해지진 않기를"(4월 22일)이라고 기원했고 대한민국 사회는 넉넉한 마음을 북한에 열었다.

연말이 되면서 "작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큰 힘이 될 1000원짜리 한 장을 구세군 냄비에 넣어봅니다"(12월 14일)나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지 않으시렵니까◆ "(12월 17일) 등의 따뜻한 메아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난 속에서도 열심히 고학해 골든벨을 울린 지관순양의 사연이 보도되면서 "고액과외나 족집게 과외보다 도서관 책과 벗하는 것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웅변한 관순이에게 "너의 꿈 잊지 말고 소중히 간직하길"(11월 10일)이라는 국민의 성원이 쏟아졌다.

결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의정부의 한 복지시설에서 추석 때 송편을 빚어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 훈훈한 이야기가 전해지자 "몸이 갈 곳은 없어도 사랑이 갈 곳은 많다"(9월 30일)는 새로운 격언이 생각뉴스에 등장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김장김치를 나눠먹는 행사가 줄을 이을 당시 "김장 김치 한 포기 치대고 같이 나누는 이 맛을… 아무도 모른다"(12월 7일)는 주부의 말이 우리들의 가슴을 울렸다.

채인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