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주식 부정거래 해명 진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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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오는 9일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1천여명의 기업인들을 상대로 특별연설을 할 예정이다.

엔론과 월드컴 등 미국 기업들의 회계부정 사건이 잇따라 터져나와 미국 자본주의 전체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만큼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업인들의 윤리와 책임의식을 강조하고, 기업 비리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의지를 밝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연설을 불과 며칠 앞두고 부시 대통령 자신의 주식거래 비리 의혹이 불거져 나와 백악관을 난처한 입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 언론이 제기하고 있는 의혹의 핵심은 부시 대통령이 10여년 전 내부자 거래를 이용해 수십만달러의 손해를 미리 막았다는 것이다.

1990년 6월 22일 부시 대통령은 당시 이사로 있던 하켄 에너지의 주식 21만주를 주당 4달러씩 총 84만8천달러에 매각했다.

그 무렵 하켄 에너지는 적자에 시달릴 때였고 2분기 결산내역이 공시된 그해 8월 20일엔 주가가 1주에 2.37달러까지 폭락했다. 결과적으로 부시는 35만달러 가량의 손해를 면한 셈이 됐다. 하지만 당시 부시는 경영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이사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부당한 내부자 거래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당시 프로 야구단 텍사스 레인저스의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 빌린 은행 돈 50만달러를 갚으려고 하켄 에너지의 주식을 팔았던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정계에 입문한 이후 내내 부시를 괴롭혀 왔다. 94년 텍사스 주지사 선거 때는 물론이고 2000년 대선 때도 상대 후보의 공격 빌미가 됐고, 잊을 만하면 다시 언론이 의혹을 끄집어내곤 했다.

부시 대통령은 "나는 당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어서 주식거래에 극도로 조심했으며 불법 거래는 감히 상상도 못했다"며 "이미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가 끝난 사안"이라고 반박해 왔다.

최근 또 다시 내부자 거래 의혹이 제기되자 백악관이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엔 거래 과정에서 빚어진 실정법 위반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규정에 따라 당시 거래 내역을 즉시 증권거래위원회에 신고했어야 하는데도 무려 7개월 이상 신고를 늦췄다는 것이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3일 기자회견에서 "당시 하켄 변호사들의 실수로 이같은 일이 빚어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나머지 주식 거래와 관련한 사항들은 모두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그는 강조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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