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실망스러운 對北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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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방일 귀국 보고회에서 밝힌 서해 교전에 관한 대책과 대북 메시지는 국민적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金대통령이 어제 보고한 내용은 정부의 기존 입장만 되풀이한 것이어서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우선 金대통령은 서해 교전의 참담한 결과를 둘러싸고 들끓는 민심을 다독거릴 구체적인 방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막연하고 원론적인 수사(修辭)로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안이한 대응을 한 것으로 드러나는 교전 과정의 책임 문제 등에 대해 국군 통수권자로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서해 교전에서 우리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라 북한도 피해를 보았다는 金대통령의 언급은 듣기 거북하다. 전투가 벌어지면 선제 공격자라도 반격을 받고 피해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햇볕정책을 통해 많은 지원을 받고 또 6·15 남북 공동선언까지 합의한 북한이 기습적 선제 공격을 자행한 그 무도한 행위 자체에 있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이를 쌍방 피해의 경중 문제로 인식하는 듯해 실망이다.

그의 대북 메시지도 기존의 정부 입장 그대로다. 국민으로선 金대통령이 최소한 북에 사과와 책임자 처벌 및 재발 방지를 엄중하게 요구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우리의 단호한 입장을 천명할 것으로 기대했다. 햇볕정책의 추진자인 그가 1인칭 주어로 직접 요구할 때 우리 정부는 물론 북한에도 강한 호소력과 경고의 의지가 전달될 수 있었겠지만 그는 '정부'라는 주어로 객관화하면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金대통령이, 북한이 다시 군사력으로 도발하려 한다면 "그 때는 북한도 아주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대북 경고를 한 점은 그나마 평가받음직하다. 그리고 그가 '햇볕정책'이란 말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 대북 경고용인지, 교전 사태의 원인 논란을 비켜 가기 위한 미봉책인지 앞으로 주목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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