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근접 물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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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불길한 실화 한 토막. 1908년 6월 30일 새벽, 거대한 오렌지색 섬광이 시베리아 퉁구스카 지역의 푸른 하늘을 45도 각도로 가로질렀다. 불덩어리는 지상 8㎞ 높이에 이르러 폭발, 거대한 화염 폭풍이 일대를 휘감았다.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전설 속 파괴의 신(Ogdy)이 강림했다는 두려움에 떨었을 뿐, 누구도 근처에 접근조차 않았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지기까지 19년이 걸렸다. 소련의 천문학자 쿨릭(L A Kulik)이 오래 된 신문에서 '불덩어리 운석(隕石)'에 관한 기사를 보고 27년 답사에 나섰다. 퉁구스카 계곡엔 뿌리가 뽑히고 새까맣게 탄 침엽수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누워 있었다. 파괴된 삼림면적(약 2천㎢)은 제주도보다 조금 더 컸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8백배나 되는 파괴력이다.

최근 컴퓨터로 상황을 재현해본 학자들은 섬광의 정체가 폭 60m인 소행성(Asteroid)이라 밝혔다. 이처럼 지구궤도에 끼어드는 소행성이나 혜성과 같은 우주물체를 통칭하는 말이 NEOs(지구근접물체·Near-earth Objects)다.

또 다른 대재앙의 악몽이 지구를 스쳐간 날은 지난 14일, 대한민국 축구팀이 포르투갈을 눌러 사상 최초로 월드컵 16강 진출이 확정된 기쁜 날이다. 당시엔 누구도 몰랐다. 대재앙이 스쳐갔다는 사실을 천문학자들이 알아챈 것은 17일이며, 그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것은 20일이다.

이번 소행성은 퉁구스카에 떨어진 것보다 훨씬 컸다. 지름(약 1백20m)이 두 배. '2002MN'이라 이름 붙여진 이 소행성은 지구와 달 사이 우주공간(폭 38만㎞)을 초속 10㎞로 지나갔다. 지구로부터 12만㎞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는데, 그렇게 가깝게 접근한 소행성으로는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됐다. 이런 크기의 우주 물체가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은 3백년에 한 번 정도다. 만약 그 소행성이 지구 어딘가에 떨어졌다면, 대기 진입 과정에서 일부 타버린다 하더라도 퉁구스카 이상의 재앙을 남겼으리라 짐작된다. 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인류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재앙을 피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 심지어 소행성의 접근 사실조차 미리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를 한없이 작게 만든다. 정말 크고 중요한 것들은 쉽게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는다.

오병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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