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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동문서답의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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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제9보 (111~135)]
黑. 이세돌 9단 白.구리 7단

부드러움은 능히 강함을 이긴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원리는 오랜 세월 바둑의 기본 전략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친 시류 탓일까. 바둑판 361로 위에서 '부드러움'이란 단어가 사라져가고 있다. 날카로운 창과 도검으로 무장한 젊은 강자들의 패도적 힘이 용암처럼 판을 뒤덮고 있다.

절정의 강자건 그들의 왕좌를 호시탐탐 엿보는 한 등급 아래의 강자들이건 모두들 전투와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판은 늘 먼지 자욱해 형세를 논하기 어렵고 승부는 삐끗하는 어떤 한 순간에 결정난다. 힘을 기반으로 한 전투바둑이 승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이세돌9단과 구리(古力)7단. 각각 한국과 중국에서 전투의 귀재로 꼽히는 두 사람의 아수라 혈전도 드디어 종착역에 가까워 왔다. 전보 백△로 흑을 잡아 이곳의 복잡하던 실타래가 정리됐기 때문이다.

이세돌이 113으로 쓱 다가서자 멀리 114에 한 집을 낸 구리의 동문서답이 재미있다. '참고도'에서 보듯 흑1로 잡으러 가도 백8에 흑9(▲자리)로 먹여쳐야 하기 때문에 수상전이 벌어져도 귀의 흑과는 네 수 정도 차이가 난다.

전혀 걱정이 없는데도 이렇게 지켜둔 이유가 126에서 드러난다. 적진 깊숙이 파고들기 위해 후방을 견고히 한 것이다.

사실 백도 우세하다고는 하지만 125까지 좌하의 실리를 고스란히 빼앗긴 처지여서 너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다가는 금방 계가바둑이 되고 만다. 127,129. 이세돌9단의 공격이 시작됐다. 마지막 전투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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