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한민국 : 애칭으로 다가선 國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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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집안에서는 아이들 이름의 끝자만을 따서 "희야" "자야"라고 부른다. 한결 정감 있게 들린다. 가까운 사이 일수록 딱딱한 정식 이름을 피하려 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선거 구호가 크게 히트한 것도 '아이 라이크 아이젠하워'가 아니라 '아이 라이크 아이크(I Like Ike)'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이 밤늦게 들어올 경우 내동 "희야"라고 하던 어머니가 선생이 출석부를 부르듯이 "이-명-희"라고 부른다. 불과 두 자를 더 붙인 것인데도 난풍은 한풍으로 변한다.

나라 이름도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가 '한국'으로, '한국'이 '대한민국'으로 그 국호 코드가 공식화할수록 전달 분위기가 달라진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흔히 쓰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대개가 다 비웃을 때 쓰는 반어법들이다. "대한민국이니까!" "대한민국 좋은 나라여!"와 같은 자조적 표현이 그런 경우다. 거기에 분단과 냉전으로 대한민국의 국호를 부정하거나 고의적으로 비하하려는 일도 작용한다.

그러나 아니다. 비행기의 제트엔진 소리보다도 크게 폭발한다는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 함성소리는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친근한 것으로 울려 퍼진다. 대한 제국의 구한말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로 백년간의 국호 코드의 흐름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았다. 활자 미디어에서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으로 적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더러는 그 대한민국이 싫어서 멀리 이민을 간 사람들도 텔레비전 앞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눈물을 흘린다. 그것을 국수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디 우리가 국수(國粹)를 할 만큼의 그런 나라라도 제대로 가져 본 적이 있었던가. 왜병이 쳐들어온 임란 때에도 임금님이 몽진을 떠난 경복궁을 향해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른 백성들이다.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되던 그날에도 우리는 마땅하게 부를 나라 이름이 없어서, 그리고 사분오열 흩어져 싸우느라고 제대로 외쳐보지 못한 그것을 이제야 4천7백만 온 국민이 한소리로 환호한다. 그것도 그냥 외치는 것이 아니다. 손목이 부러지고 어깨가 탈골하는 열광의 손뼉이요, 북소리요, 흔들어댄 깃발 속에서 외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응원 코드는 단순한 애국심이나 승부의식만으로 풀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적 코드의 정식 이름을 애칭과 같은 사적 코드로 변환시킨 데 큰 의미를 갖는다. 마치 공원을 자기 집 정원의 컨셉트로 전환시킨 것과 다름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지금까지 사유재와 공공재의 두 공간이 한국처럼 그렇게 딴판인 사회도 드물었다. 공공시설물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부숴버린다.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은 바로 그 공과 사의 대립 코드를 무너뜨린 것이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는 붉은 악마의 손뼉 구호는 사박자이다. 나라이름이 네 글자라 그렇고 행진곡의 사박자가 어울리는 축구경기장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몸에 밴 박자 코드는 삼박자다. 일본의 이박자, 서구의 사박자 문화코드와는 다르다.

그런데도 한국학자 최준석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붉은 악마의 사박자 리듬은 한국적 박자감으로 변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냥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으로 맨 첫음에 악센트를 넣기 때문이다. 아~리랑이 그렇고 한~많은의 한오백년이 그렇다. 민요만이 아니다. 안녕하세요의 인사말까지도 '안'자의 첫 음에 악센트가 붙는다. 서양사람들에게 그 인사말을 시켜보면 으레 안녕하세요의 중간음인 '하'에 강세가 붙는다고 한다.

붉은 악마는 딱딱하고 거창한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국호를 개개인의 몸에 밴 전통적 박자감으로 변형시켰다. 국호를 친근감 있는 애칭의 사적 코드로 전환시킨 것과 같다. 말더듬이라도 노래를 부를 때에는 가사를 더듬지 않는다. 붉은 악마의 응원구호는 대한민국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더듬지 않고 당당하게 그것을 외칠 수 있도록 코드화한 것이다. 어쩐지 개인이 말하기에는 어색했던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국호가 이제는 "희야" "자야"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처럼 다정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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