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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촌에서도 '여성 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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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전쟁과 내전·독재·기아를 피해 조국을 떠나 지구촌 곳곳을 방황하는 전세계 난민의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20일 '세계난민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세계난민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1월 현재 난민수는 약 1천9백78만명으로, 이중 80%는 여성과 어린이다. 이에 따라 UNHCR는 '여성난민'을 올해의 의제로 정했다. 루드 루버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어느 난민 사회에서든 여성들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면서 "우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난민촌 여성과 어린이들은 인신매매와 강간·집단학살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UNHCR는 경고한다.

파키스탄과 이란 등지에 분산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과 어린이 난민들은 구두닦이와 카펫 짜기·유리가공공장 근로 등에 동원되고 있다. 여기서 벌어들인 일당으로 온 가족이 연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뢰 등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매설된 대인지뢰에 희생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4만명의 소말리아 난민들이 생활하는 케냐의 난민촌 역시 여성들에게는 피난처가 될 수 없다. 여성과 아이들은 대거 감자줍기에 동원되고 있으며, 강도와 강간범들이 들끓어 난민촌 밖으로 외출할 때는 UNHCR에 보호포기 각서를 제출해야 할 정도다.

여성과 어린이 난민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전체 난민수는 지난해보다 2백만명 감소했다. 이는 새로운 난민 발생수보다 고향으로 돌아간 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유럽 내 난민과 망명신청자·귀향한 난민·국내 추방자 등을 합친 이른바 '우려대상자' 수도 4백86만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4% 줄었다.

현재 가장 규모가 큰 난민은 팔레스타인인과 아프가니스탄인으로 각각 3백80만명이 인근 중동·북아프리카와 파키스탄 등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미국의 공습을 피해 지난해 10월부터 약 두달 사이에 19만9천여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파키스탄으로 이동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프리카의 경우 4만4천8백명의 앙골라인과 3만5천명의 수단인 등 모두 18만명의 난민이 내전을 피해 인근 국가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등 선진국들이 지난해 9·11 테러 이후 난민 수용을 기피하고 있으며, 예산 지원에 인색해지면서 난민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지원은 날로 후퇴하고 있다. 1995년 13억달러에 달했던 UNHCR 예산은 지난해 8억1천만달러로 줄었다.

루버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선진국들이 UNHCR 지원을 꺼리는 것은 근시안적 자세이며, 이들이 난민들에게 적절한 보호와 생계대책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국 내 범죄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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