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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따라 흐른 27년 어부의 삶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5면

강이 친구였던

소년이 어느새

초로가 됐다.

이젠 어떤 고기가

어디를 좋아하는지

두루 꿰뚫어

잡을 정도.

최근엔 군(軍)통제가

풀려 살기가

더 편해졌다.

그러나 실향민 2세인

그의 독백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통일이란 놈이

물고기라면

당장이라도

잡아들이련만…."

어느날인가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소년은 부어터진 눈으로 마을 뒤 강둑을 찾았다. 그곳에선 늙은 소나무 몇그루가 언제부턴가 흘렀을 강물을 굽어보며 이따금씩 솔바람을 흘려주고 있었다. 제법 반반하다 싶은 바위에 걸터앉아 애꿎은 풀을 쥐어뜯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손에 잡히는대로 돌멩이를 강을 향해 던져댔다. 반나절이나 흘렀을까. 괜한 화풀이 돌팔매질도 이내 심드렁해지고 강물은 때맞춰 비낀 노을에 황금비늘을 반짝이고 있었다. 포근한 자유가 느껴졌다.

소년은 집보다 그곳이 더 좋았다. 그래서 그 뒤론 별일이 없어도 틈만 나면 그곳을 찾았다. 철철이 바꿔가며 흐드러지는 들꽃하며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은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저 말없이 흐르는 강물과 그 위를 건들대는 바람만이 친구라 여겼다.

그리고 50여 년-. 소년은 어느덧 환갑을 넘긴 초로가 됐건만 아직도 그곳을 맴돌고 있다. 어릴 적 노닐던 강둑이 성에 차지 않았음인가. 임진강 어부 장수득(張守得·62·사진)씨는 그런 사람이다. 장씨는 제대 직후 젊은 맘에 대처살이를 해보겠노라며 상경했다가 3년여 만에 때려치우고 다시 임진강 품으로 돌아와 여태껏 강고기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는 토박이다. 어부생활만 27년째.

장씨는 요즘 사는 맛이 난다. 죽어가는 줄만 알았던 강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황복과 쏘가리도 제법 올라오고 잉어·장어·붕어 등도 씨알이 굵은 놈들이 심심찮게 걸려든다. 또 새끼를 방류한 덕분이긴 하지만 참게도 흔해졌고, 은어도 한 뼘 넘는 게 물살을 가르며 오르내리는 걸 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그렇다고 예전보다 고기가 몇갑절 더 잡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강이 살지는 게 느껴져 좋을 뿐이다.

"왜 있잖아요, 농부들이 튼실하게 자라는 벼를 보고 느끼는 기분 말이에요. 아직 쌀가마를 곳간에 들여놓은 것도 아닌데 뿌듯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장씨 혼자만 기분을 내는 게 아니다. 올해엔 강 절벽에 부엉이·솔개도 유난히 많은 둥지를 틀었고, 어디로 사라졌던 물수리란 놈도 나타나 물고기사냥에 한창이다.

장씨의 어장은 파주군 적성면과 장남면을 잇는 장남교부터 문산쪽으로 2㎞ 구간으로 동네에선 '두지리 어장'이라 불린다. 어부생활을 시작해 2년간은 하류쪽 주월리에서 하다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진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려면 당국의 허가가 있어야 하는데 두지리 어장에는 장씨 말고도 여섯명이 함께 고기를 잡는다.

장씨는 새벽 다섯시면 어김없이 강에 나간다. 강이 꽁꽁 얼어붙는 엄동설한과 심한 폭풍우 때를 제외하곤 습관처럼 돼버린 일이다. 어장을 오가고 잡은 고기를 실어나르기 위해 개조한 '독일병정 오토바이'를 타고 강에 도착하면 그를 반기는 건 0.5t 짜리 '두지리 2호'(그의 면허 번호이기도 하다). 살집 좋은 장정 하나 뉘이기도 모자랄 것 같은 보잘 것 없는 크기지만 장씨에겐 다섯 가족의 생계를 이어준 버팀이자 강 생활의 반려이다. 처음엔 목선으로 시작해 5년 전 세번째 바꾸면서 지금의 FRP선을 장만했다. 몰골은 그래도 그물걸이에다 어창·노·삿대·부표·뜰채 등 갖은 어구를 갖춘 어엿한 어선이다. 몇 년전에 모터까지 달아 강고기를 잡는데는 그만이다. 장씨는 이 놈에 의지해 어장을 오르내리며 전날 쳐놓은 그물과 낚시, 삼각망, 통발 등을 건져올려 잡힌 고기들을 거둬들이는데만 오전이 모자란다. 점심은 때우는 듯 마는 듯 다시 이들 어구들을 설치하노라면 또 다시 서너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하루종일 강일을 하다보면 등골이 빠지는 것같지만 그래도 펄쩍펄쩍 뛰는 싱싱한 놈들이 건져질 때면 언제 그랬냐 싶은 게 우리네 일이에요."

장씨만큼 이곳 물고기들의 생태를 잘 아는 이도 거의 없다. 잉어란 놈은 물이 깊으면서도 물굽이를 돌아 물살이 그믄 데를 좋아하고, 쏘가리는 물살이 있으면서 돌이 많은 곳을, 장어도 물살은 좋아하지만 비교적 트인 곳을 좋아한다는 걸 그는 꿰고 있다. 이에 따라 수준(?)에 맞게 길목을 가로 막고 어구를 설치하지만 허탕을 칠 때도 종종 있다. 그래서 그는 바다에서와는 달리 강에선 고기와의 머리싸움이라기보다는 재수를 더 믿는 편이다.

특히 돈이 되는 황복이나 쏘가리·장어·참게 등이 잡히는 걸 보면 그렇다. 어느 날은 한 마리도 없다가 또 어떤 날엔 그물이 묵직하게 달릴 정도로 걸리는 게 다반사다. 그러다보니 수입도 들쭉날쭉 하게 마련이다. 재수가 없으면 한달 꼬박 해야 1백만원어치 올리기가 빠듯하고, 운수가 대통한 날은 하루 1백만~2백만원도 거뜬할 정도니까.

사실 그가 본격적인 고기잡이를 시작한 1970년대 중반만 해도 거짓을 보태 물 반(半) 고기 반(半)인 게 임진강이었다. 그러다 80년대 중반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생활에 기름기가 돌면서 임진강에도 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도권일대에 지나는 곳마다 매운탕집 등이 들어서면서 자연산 민물고기의 수요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나 할까. 강고기잡이가 돈이 된다싶으니까 너도 나도 몰려들었고, 심지어 단속에도 불구하고 약을 풀어 물고기를 잡는 불법까지 판을 쳐댔다. 거기에다 생활오수·공장폐수까지 마구 흘러들어 풍요롭던 임진강이 시름거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어름치·살치·밀자개 등 많은 강 식구들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본 건 물론 장씨와 같은 어부들. 어족이 줄다보니 그물이라고 쳐 봐야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쩌랴,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배운짓이라곤 이것밖에 없으니.

장씨는 어족이 줄어드는 만큼 품을 늘려가며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장남을 대학에 보내는 등 2남2녀를 훌륭히 키워냈다. 그러자니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장마가 지면 좋은 고기가 많이 올라오는 것을 노려 몰래 강에 나갔다가 노가 부러지는 바람에 2㎞쯤 떠내려가다 간신히 헤쳐 나오기도 했고, 회오리바람에 배가 뒤집혀 수장이 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장씨에겐 이같은 천재(天災)는 오히려 약과다. 최전방 지역이다보니 입·출어때 군의 통제를 받게 마련인데 이게 오히려 삶을 더 옥죄었던 것. 동서를 막론하고 휴전선 근처에서 간첩은 고사하고 거수자(거동이 수상한 자를 줄인 군대용어)라도 나타났다 하면 보름이고, 스므날이고 꼼짝없이 앉은뱅이 신세가 되곤했었다. 거기다 웬놈의 훈련은 또 그리 많든지….

"아마 우리만큼 매일같이 분단의 설움을 실감하며 살아오기도 쉽지않을 겁니다. 사정이 뻔한데도 어쩌다 물살에 쓸려 어쩔 수없이 배를 강건너편에 대기라도 하면 당장 면허취소가 떨어지곤 했죠. 월북할 지도 모른다는 게 이윱니다. 그 때문에 모터를 달지도 못하게 했을 정도이니까요. 하여간 그놈의 통일은 언제나 될는지 원…."

장씨의 어장엔 지지난해부터 이같은 군의 통제가 풀려 요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살기가 편해졌다. 하지만 장씨는 요즘도 이같은 푸념을 입에 달고 산다. 그에겐 통일이란 두 글자가 생계문제 이전에 원초적 본능처럼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해방 전 태어난 곳은 이곳 강가이지만 남과 북으로 갈라지기 전, 그리고 삼팔선이란 게 그어진 뒤에도 한동안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쏘다니던 산이며, 들판이 아직도 저쪽에 삼삼한 그다. 게다가 아버지의 고향도 그 쪽 어드메(부친이 여든한살로 작고할 때까지 "알 필요없다"며 끝내 동네이름을 일러주지 않았다)라니 요즘 말로 실향민 2세인 셈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강이 좋아, 강만 바라보며 산다"는 장씨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평생을 박혀 사는 속내도 어쩌면 이같은 내력때문일지도 모른다.

장씨에게 소망이 있다면 강물을 길어다 먹던 어릴 적처럼 강이 맑아져 강식구가 북적거렸으면 하는 거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죽기전에 통일이 돼 고기잡이 대신 '저쪽'을 맘대로 오가며 뱃놀이나 한번 해보는 거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그가 노래를 삼는 독백은 한결같다.

"통일이란 놈이 물고기라면 까짓것 당장이라도 잡아들이련만…."

글=이만훈 전문기자,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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