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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위기 家計에 회생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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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융 당국이 개인워크아웃 전담기구를 만드는 등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선 데는 급증하는 가계 대출과 카드 남용으로 자칫 가계 부실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가계가 파산에 이르기 전에 신용 위기에서 빠져 나올 기회를 제공해 '가계 발(發) 금융대란'을 막겠다는 취지다. 외환위기 직후 부도위기에 몰린 기업들에 워크아웃(기업개선) 기회를 줬던 만큼 가계에도 갱생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가계파산 미리 막자=은행 빚을 내 아파트를 구입하는 붐이 일면서 가계 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1백54조원이던 가계대출은 5월 말 1백85조원으로 급증했다. 가계 대출의 연체율도 같은 기간 1.21%에서 1.58%로 높아졌다. 신용카드 남발에 따른 과소비 풍조로 카드 사용액도 2000년 말 2백37조원에서 지난해 말 4백80조원으로 늘었고 연체율은 6.2%에 이른다. 은행·카드사의 신용불량자는 이미 1백여만명에 달한다.

무엇보다 9월부터는 은행을 포함해 전 금융회사에 5백만원 이상(종전 1천만원 이상)을 연체할 경우 개인의 정보가 전 금융회사에 공유되고 내년부터는 5백만원 이하까지로 확대된다.

이렇게 될 경우 금융권의 가계대출 회수 압력이 가중돼 가계 파산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행 파산 관련법은 기업 중심으로 돼 있어 가계(개인)의 구제 장치로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새로 도입할 개인 워크아웃이 제대로 작동되면 개인의 신용회복은 물론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도 줄어들어 신용도를 높이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어떻게 시행하나=개인 여신을 취급하는 은행·카드·보험 등 모든 금융회사가 개인 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채권자인 이들 금융회사가 참여해 개인 워크아웃의 절차·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자율협약'을 만들고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도 곧 마련된다.

우선 한개의 금융회사에만 연체한 사람은 해당 금융회사에 설치될 전담 창구를 찾아가 채무상환계획을 작성해야 한다. 금융회사는 연체자에게 이자와 수수료를 깎아주거나 카드대금을 대출로 전환해주는 등 조치를 취해주게 된다. 두개 이상의 금융회사에 연체한 다중 채무자는 은행연합회에 설치될 '개인신용회복 지원센터'를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 그곳에 배치된 전문 상담사는 개인의 전체 채무상황을 파악하고 상환 가능한 재산을 확인한 후 채권 금융회사와 개인간의 워크아웃을 중재하게 된다.

◇9월 전엔 자율시행=정부가 9월부터 개인 워크아웃을 모든 금융회사에 의무화하기 전에 개별 금융회사들은 6월부터 자율적으로 도입 중이다.

<표 참조>

국민·조흥·서울·한미은행 등은 연체 기간과 금액에 따라 연체금을 대출로 전환(대환대출)해주거나 연체 원금과 이자·수수료를 깎아주고 있다. 국민·LG·삼성·외환카드 등은 연체자가 상환계약서를 제출할 경우 연체 이자를 줄여주는 등 상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는 일부 은행·카드사에 한정돼 있고, 혜택범위도 제한적이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참여연대 박원석 시민권리국장은 "기업과 달리 지금까지 가계부실은 가계에만 책임을 물었다"면서 "가계에 일정한 면책을 주면 금융회사들도 대출심사를 더 엄격하게 해 결과적으로 신용도가 올라갈 수 있다"고 정부의 제도 도입을 반겼다. 금융연구원 김상환 연구위원은 "파산 단계에 가면 신용회복이 어려우므로 사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면서 "다만 채무상환계획을 성실히 제출하는 가계에만 혜택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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