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가객 정 태 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63면

'아, 대한민국'할 때 곧바로 "하늘에 조각구름 떠있고"가 반사적으로 떠오른다면 우리 가요사를 온전히 학습한 게 아니다. 똑같은 제목의 노래가 하나 더 있다.

방송에선 듣기 어려워도 1990년대 저항의 맥박이 살아 있는 공간에선 어김없이 울려 퍼지던 그 노래.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로 마무리되는 또 하나의 '아, 대한민국'을 만들고 부른 이가 정태춘이다. 가사는 '불온'하기 그지없다. 발표할 때 이미 불법 음반임을 표방한 터다.

"제가 무슨 조용필이라고"한다면 그건 노래 깨나 부른다는 자를 향한 면박일 것이다. 한때 방송사 예능 PD들 사이에는 "제가 무슨 정태춘이라고"하는 말이 통하던 적이 있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한다면 그를 조금은 이해한 자다. 정태춘에 비유된 자는 첫째, 감각보다 의식이 승한 자이고 둘째, 옳다 싶은 일엔 타협이 없는 자다.

그는 '시인의 마을'(1978)로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노랫말이 한 편의 시였다. 그 노래로 문화방송의 신인 가수상을 받았다.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로 시작하는 '촛불'로는 동양방송의 작사상까지 받았으니 그는 여러 가지로 재주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 젊은이의 신작로는 길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수가 대중과 친해지기 위해선 노래만 잘 부르면 되는 게 아니었다. '명랑운동회'에도 불려나갔지만 그건 '청바지에 색동옷 입은' 형상이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무엇 때문에 노래하는가'. 이것은 그에게 '무엇 때문에 사는가'와 동일한 질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팔릴까'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일까'를 근심하던 그는 마침내 '명랑운동'이 아닌 '노래운동'에 첨벙 뛰어든다.

모든 공연장은 사실 대중 집회다. 다만 그는 재미보다는 의미를 존중했고 그 방향으로 일관되게 움직였다. 그는 이를테면 노래로 '발언'하는 사람이다.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면 그야말로 복 많은 사람이다.

세상의 문제아는 모아 보면 두 종류다. 문제를 일으키기만 하고 해결에는 관심이 없는 쪽이 그 하나다. 다른 한쪽에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자들이 있다. 도대체 누가 누구의 예술혼을 검열할 수 있는가. 이게 그가 지닌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대중 음악계의 오랜 족쇄였던 사전 심의에 정면으로 대응해 마침내 창작의 자유를 쟁취했다.

이 사건은 훗날 대중 문화사에 '정태춘의 난'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시인의 마을' 2절은 "우산을 접고 비 맞아봐요"로 시작한다. 정태춘식(式) 삶의 방식을 강렬하게 암시하는 복선이다.

사람들은 비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실은 늘 우산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풍경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과 그 풍경 속에 뛰어들어 온 몸을 비로 적시는 사람은 다르다. 그는 상업주의가 춤추는 노래바다 위의 등대지기 같은 인물이다. '빠른 길보다는 바른 길'이라는 광고의 카피는 그에게 어울린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