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살리자" 머리 맞댄 학계·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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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인문학의 위기'는 이제 단순히 인문학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대학사회 전반의 붕괴를 가져오고 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인문학 위기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 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김인수)의 인문정책연구위원회(위원장 김여수)가 몇 차례의 워크숍을 거쳐 오는 14일 오후 2시 서강대 다산관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지금까지 인문학 위기를 활발하게 논의해온 전국대학인문학연구소 협의회(회장 유초하)를 비롯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망라된 모임이다.

이날 발표와 토론은 주로 진단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염재호(고려대·행정학)교수는 "학문의 불균형 발전이 인문학의 고사와 같은 단기적인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장단기적 현실변화를 예측할 수 없어 실용학문 자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우려한다.

그는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학 자체의 빈곤과 외부 요인이 상호작용해 촉발한 '이중적·중층적 위기'라고 진단하고, 그 중에서도 인문정책의 부재와 고등교육정책의 오류 등 외재적 요인이 1차적 원인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진단이 인문학의 기득권자들에 대한 부당한 보상이나 특혜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귀결돼서는 안된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최갑수(서울대·서양사)교수는 지금의 인문학 위기는 우리나라의 근대화·서구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1970, 80년대를 거쳐 국가의 지원이 빈약한 상황에서도 인문학은 다양한 분화, 두터운 연구자 층에 힘입어 독자적인 담론을 생산해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한 최교수는, 그러나 근대화라는 시대적 요청 때문에 대학이 학문의 수입상 역할에 몰두하는 등 역설적으로 학문의 대외종속성을 심화시키는 결과도 낳았다고 진단한다. 다시 말해 "양적 성장이 질적 도약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것이 위기의 양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김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선임연구부장은 디지털 정보와 인문학의 관계를 전향적으로 설정할 것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인문학은 예를 들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을 전산화해 학문활동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그쳤으나 앞으로는 인문학이 시·공간적 단절 없는 사이버 세계의 다양한 활동에 개입해 인문학 연구에 새로운 주제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영종(성공회대·영문학)교수는 단일한 가치로 획일화하는 세계화와 학문의 자율성을 감시·조정하는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는 프로젝트 중심의 지원 방식에서 원인을 찾고, 오히려 인문학은 이를 극복하는 대안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외에도 전영평(대구대·행정학)·손호철(서강대·정치학)·이태수(서울대·철학)·강내희(중앙대·영문학)교수를 비롯해 최성모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본부장, 서남수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지원국장이 참석해 토론한다.

앞으로 서너차례의 지역 회의와 국제회의 등 파상적인 회의를 거쳐 인문학 진흥책을 찾아나가게 된다. 김여수위원장은 이번 심포지엄이 "인문학 진흥을 위해 정부·학계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 하는 컨센서스를 모으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앞으로 이런 노력을 묶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문제를 본격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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