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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푸른 도화선 속, 꽃을 몰아가는 힘이

푸른 내 나이 몰아간다, 나무 뿌리 시들리는 힘이

나의 파괴자다.

하여 말할 수 없구나, 허리 굽은 장미에게

내 청춘도 똑같은 겨울 열병으로 굽어진 것을.

바위 틈으로 물 몰아가는 힘이

붉은 내 피를 몰아간다, 요란한 강물 말리는 힘이

내 피를 밀랍처럼 굳힌다.

하여 말할 수 없구나, 내 핏줄들에게

산(山) 샘물에 똑같은 입이 빨고 있음을.

-딜런 토머스(1914~53) '푸른 도화선 속 꽃을 몰아가는 힘이' 중:정규웅 역

내 귀가 귓밥을 밀어내는 소리 요란해서 나는 별들이 학교 갔다 돌아가는 소리 듣지 못하고, 진딧물 군단(軍團)이 목백일홍 잎새를 갉아먹고 흰 피 토하는 소리 듣지 못한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종일 썩은 눈물이 바윗돌 같은 슬픔 밀어내어, 나는 보지 못한다, 닭장차에 실려가며 까박까박 눈인사하는 오리들과, 손바닥 입맞춤처럼 그들이 날리는 흰 깃털을. 하늘에는 기름띠 두른 날개, 땅에는 급커브의 검은 브레이크 자국. 나는 알지 못한다, 내 귓속 열목어와 내 눈속 장수하늘소가 언제, 무슨 약으로 독살되었는지를.

이성복<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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