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업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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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DJ는 둘째 홍업을 각별히 사랑했다. 홍일이나 홍걸보다 더 좋아했다. 장남이나 막내에 대한 막연한 애정과는 좀 달랐다. 옥중의 DJ가 홍업에게 보낸 편지엔 이렇게 쓰여있다.

"어느 자식이라고 차별이 있겠냐마는 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너도 잘 알 것이다."

DJ는 홍업의 신중함을 좋아했다. 때문에 어지간한 것은 홍업에게 다 맡겼다. 두사람과 미국 망명생활을 함께 한 김경재 의원의 얘기다.

장남 홍일의 측근인 문희상 의원도 같은 얘기였다. DJ가 세아들 중 홍업을 가장 믿었다는 것이다. 중요업무는 홍업의 몫이었다고 했다. 당연히 홍업은 정치를 했음직했다. 그러나 그는 마다했다. 지난 16대 총선 때다. 홍업은 김경재 의원을 찾아왔다.

"저한테 형(홍일)대신 정치를 시키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저는 정치 안해요. 우리 형은 정치 안하면 죽어요. 그러나 저는 달라요. 그러는 사람 있으면 설득해 주세요."

DJ는 그런 홍업을 기특해했다. 특히 홍업은 대인관계가 좋았다. 언제나 모두에게 친절했다. 형이나 동생과는 확연히 달랐다.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문희상 의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文의원이 국정원 기조실장을 할 때였다.

"이민을 가고 싶어요. 사람들 만나기가 싫어요. 안 만나주면 건방지다고 씹어요. 별별 소문이 다 돈대요. 여자관계 루머도 있대요. 그러니 안 만나줄 수도 없어요."

DJ는 그런 홍업을 안쓰러워했다. 자기 때문에 겪는 고통이라 여긴 거다. 그러나 홍업은 늘 "대통령 아들임에 만족한다"고 했다. 별다른 욕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옥두 의원은 "홍업은 오직 아버지 일만 한 사람"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그렇게 기억한다. 그러나 홍업에겐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야당 시절이다. 그는 외제 차를 하나 샀다. 돈을 제법 벌 때였다. 그러니 나름으론 떳떳하다 여긴 거다. 남의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본 거다. 그러나 야당총재 아들로선 될 법한 일이 아니라는 게 주변의 충고였다. 결국은 팔아치워야 했다.

그의 그런 기질은 DJ 집권 이후 노골화됐다. 그는 친구들과 강남의 술집을 드나들었다. 술먹는 게 뭐 그리 잘못이냐 여긴 것 같다. 그러니 친구의 친구도 끼어들었다. 술집에서 그와 마주친 사람이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십수명의 마담들이 검찰에 불려갔을까.

아태재단에 대한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2월이었다. 홍업으로선 근신해야 할 때였다. 그러나 그는 강남의 한 오픈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옆자리의 손님들이 쑥덕거렸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안했다. 결국 옆자리 손님이 먼저 자리를 떴다. 그는 지금 매일 교회를 찾는다 한다. 무어라 기도하는지는 모르겠다. 홍업이 옥중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중엔 이런 구절이 있다.

"하나님,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DJ가 홍업에게 괴롭고 힘들 때 하라며 가르쳐준 기도내용이다. 그것을 홍업이 DJ에게 다시 일러준 것이다. 아마도 지금 홍업은 그 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평온한 마음으로 종아리를 걷어올리길 바란다.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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