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흥겨운 주한外人 벼룩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6일 서울 덕수궁 뒷길의 정동극장. 경쾌한 스코틀랜드 음악이 흘러 나온다.

화덕 위에서는 소시지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다. 천막을 친 테이블 위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올라와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야외 무대는 장터로 변신했다.

월드컵을 맞이해 정동극장에서 열리는 '작은 지구촌 축제'의 첫 날인 '유럽의 날' 풍경이다.

벼룩시장 초입에는 넉넉한 인상을 풍기는 스코틀랜드인 가빈 매케이가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배에 앞치마를 두른 그는 연신 호탕한 웃음을 날리며 부지런히 소시지를 굽고 있다. 음악에 발 장단도 맞추며 흥겨워한다.

매케이는 한국인 아내 마리아와 함께 17년째 서울 생활을 하고 있다.

"김치 소시지, 야채 소시지 등 여러가지 소시지를 개발했지만 오늘은 오리지널 스코틀랜드 소시지를 갖고 왔습니다. 품질 좋은 돼지 어깨살에 빵가루 등 19가지 양념을 넣어 직접 만들었습니다. 슈퍼에서 파는 소시지와 달리 신선해서 맛있습니다."

외국계 기업의 컨설턴트로 한국에 왔던 그는 지난해 회사 일을 잠시 쉬고 소시지 가게를 시작했다. 한국 생활 십여년간 스코틀랜드에서 먹던 소시지 맛이 너무 그리워 고향에 갈 때 마다 소시지 만드는 법을 연구했단다.

소시지 다음으로 들고 나온 비장의 무기는 '스코틀랜드 전통 무용'. 가문을 상징하는 체크 무늬 타탄(Tartan)퀼트를 입고 남녀가 쌍을 이뤄 춤을 춘다.

이날은 그가 직접 안무를 한 '릴 오브 서울(Reel of Seoul)'과 2백50년 전통의 '스트립 더 윌로(Strip the Willow)'등 3가지 춤을 선보였다. 매케이 부부 외에도 영국 대사 부부 등 4쌍의 남녀가 무대에 섰다.

매케이는 1989년부터 스코틀랜드 댄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날 무대에 등장한 사람들도 그에게서 1년간 춤을 배운 수강생들이다.

"매년 12월 첫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성 앤드루스 볼(Saint andrews ball)'에서는 영국인들과 함께 밤새 먹고 마시며 춤을 춥니다. 예전에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도 통금이 해제되는 새벽 시간까지 어울리다가 아침을 먹은 뒤 헤어지곤 했습니다."

이날 손수 디자인한 수영복·아동복 등을 벼룩시장에 내놓은 미셸 패터슨(영국·디자이너), 액자·쿠션·인형·사진첩 등의 소품을 판매한 셸리 버클리(영국)도 매케이 부부와의 인연으로 행사에 참가했다.

한국인들도 유럽 문화를 보여주는 데 한몫 했다. 한국외국어대 샹송 동아리 '헤조낭스' '한국 바젤' 등 한국인 동아리들이 샹송·요들송 등을 공연한 것. 시장 한쪽편에서는 한지 공예품, 시민들이 기증한 한복 등도 판매대에 올랐다.

정동극장 이경주씨는 "전문가 수준의 공연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주한 외국인과 일반 시민들이 팔고 사고, 먹고 춤추며 즐기는 벼룩시장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7일은 '북남미의 날'로 주한 미군 '댁시 밴드'의 팝송 공연, 미군인 가족의 벼룩 시장, 브라질인이 직접 만드는 브라질 커피 등이 등장한다.

8일은 '아시아의 날'. 한국 전통 혼례, 어린이들의 꼭두각시 춤 공연이 벌어진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전통음식도 소개된다.

또 중국 화교 들이 전통 수교예품 벼룩시장을 열고 화교 학생 50명이 중국 용춤을 춘다. 장은 오후2시부터 선다. 벼룩시장으로 얻은 수익금은 유니세프(세계아동기금)에 기탁한다. 문의 02-7511-500.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