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아우 문화' 벗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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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무슨 무슨 게이트다 하는 권력형 비리 사건들의 수사가 반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 같은 수사 과정에서 구속되거나 불명예 퇴진한 '거물'들만도 열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그들의 면면은 대통령 친인척·여당실세에서 청와대·검찰·국정원 간부에 이르는 권력층 인사들이다. 대통령의 셋째 아들도 구속됐고 둘째 아들은 수사를 받고 있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다지만 최근 몇개월 동안 드러난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는 체감도가 다르다. 우선 양태에 있어 권력형 비리의 백화점을 보는 듯하다. 이권을 챙겨주고 돈을 챙기는 고전적인 수법에서부터 수사·조사권 등 국가기관의 권한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행위까지 '권력 브로커'들의 다양한 모습이 망라됐다. 더 안좋은 것은 어느 곳 하나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각종 권력기관들이 줄줄이 연루됐다는 점이다. 서로 감시하고 경고를 보내야 할 기관들이 한 통속이 돼 '게이트 공화국'을 만든 셈이다.

더욱 민주화되고 사회개혁을 기치로 내건 정권에서 왜 이같은 현상이 벌어졌는가.이런 저런 권력 주변부 비리가 불거지고 대통령 아들에 대한 수사가 막 시작됐을 때 만난 현 정권 인사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특별히 더 심한 것은 없다. 봐라. 과거 정권에서는 청와대 비서관이 수십억원을 해 먹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 않으냐. 사회가 더 투명해지고 검찰의 독립성이 강화되면서 예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까지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가 과거의 '강압형'보다는 '거래형'이나 '기생(寄生)형'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핵심에서 빗나가 있다. 현 정권의 독특한 권력형 비리는 지역편중 인사와 끼리끼리 문화가 토양이 돼 확산됐다고 할 것이다.

정권 교체는 이뤘지만 호남이 역대 정권에서 장기간 소외됐던 탓에 제대로 훈련받은 인물들이 적은 상태에서 지역편중 인사가 이뤄진 것이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자질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일부 인사들이 권력 주변에 포진하면서 부분적으로 비리가 발생했고, 그 지역 특유의 '형님 아우 문화'가 결국은 다수를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그동안의 소외 때문에 부풀려진 도취감과 조급증도 비리를 가중시킨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제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는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김홍걸(金弘傑)씨 구속에 이은 김홍업(金弘業)씨 수사는 말 그대로 권력형 비리 수사의 결정판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혐의는 그들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주변 인물들의 배경이 돼 돈을 챙겼다는 것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주변인물은 과거에는 그저 정치판을 떠돌거나 소규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다양한 이권을 파악하고 해당업체 사람들을 접촉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 아들이라는 위세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아들 수사는 사법처리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그들이 얼마를 챙겼느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리를 거든 기관과 인물의 역할도 규명해야 한다. 총체적인 실체를 밝혀 책임을 물어야 제대로 정리가 되고 교훈도 얻을 수 있다.

두 아들을 함께 구속하는 데 대한 동정론이 제기되는 등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안팎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수사팀의 의지는 굳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가 '대통령 아들의 권력 비리 백서'를 만들 정도는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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