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중기획>줄서기내몰리는공무원:줄 안서면 '괘씸죄'… 공무원 "선거 겁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공무원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6·13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전국이 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줄서기와 줄세우기로 사분오열(四分五)의 몸살을 앓고 있다. 선관위엔 공무원의 선거개입 고발이 쏟아진다. 지난 4월 말 나주시청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시청공무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5%가 '줄서기가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현직 단체장이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부단체장이 선거에 뛰어든 곳에선 이들을 지지하는 공무원들이 선거에 개입하며 우왕좌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직 시장 사람은 본청 근무가 곤란하다"=충북 C시의 시장 비서실은 '보안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시장 행사 때마다 전임 시장 K씨가 나타나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청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비서실에선 K씨에게 줄선 직원들이 시장의 일정 관련 정보를 유출했다고 본다.

K씨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물밑 편가르기'는 복잡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전·현 시장의 출신 고교를 따라 급속하게 '헤쳐 모여'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 이들은 "K씨측 공무원들이 선거운동 관련 문건을 만들었다""현 시장이 특정고교 출신 물먹이기에 나섰다"는 등의 말을 퍼뜨리며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금품제공 등의 의혹으로 낙마한 이정일 전 서구청장은 "시청 간부들이 현 시장 편에서 선거운동을 지원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송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전남 화순군 6급 직원 吳모씨는 현 군수를 허위 비방한 혐의로 지난달 26일 구속됐다. 전남도·화순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군수가 사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돈을 기준으로 인사를 했다"는 글을 여섯 차례나 올렸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가 전직 군수이자 이번에 군수 후보로 출마한 L모씨를 선전하기 위해 글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편가르기 와중에서 '물먹은' 전직 시장이나 군수 쪽에 선 사람들의 고민은 깊다.

강원도의 한 자치단체 공무원인 L씨는 7년째 시 산하 사업소를 전전하며 한직을 맴돌고 있다. 1995년 민선 1기 선거에 출마했다가 패배한 관선시장의 비서였는데 현 시장이 "전직 시장 사람인 만큼 본청 근무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인 탓이다.

대전의 한 구청 직원은 "지난 지방선거 때 현 구청장의 험담을 하고 다닌 6급 직원이 구청장 취임 후 여섯번이나 보직을 전전한 끝에 사표를 제출했다"며 "괘씸죄에 걸리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줄서기 대열에 합류하는 시늉이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직에 심복 심고 충성 강요=충남 연기군에선 최근 군수 입후보자가 공무원을 상대로 충성서약을 받았다는 글이 군청 홈페이지에 올랐다.

연기군청 15명의 직원들이 지난달 1일 공주의 한 식당에서 모 정당 군수 후보를 초청해 그를 군수로 밀기로 결의했다는 것이다. 선관위와 경찰이 조사에 나서자 당사자들은 "모 계장의 사무관 승진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해명했지만 군청에선 편가르기의 대표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대구시의 한 기초자치단체에는 비서실장·행정·감사 등 6급 핵심 보직에 단체장과 같은 중학교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이곳에선 30여명의 동문이 정기 회합을 하며 단체장 지원세력임을 자처하고 있다. 군수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전북 J군의 한 후보는 아예 "내가 군수가 되면 가족을 취직시켜 주겠다"며 주민들에게서 이력서를 받았다.

대전·충청지역 자치단체 4~5곳에선 비서실장들이 선거 개막 전에도 선거 관련 업무를 해당 실·국에 지시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지난 선거에서 참모로 뛴 공로를 인정받아 비서실장직을 맡고 있는 인물들로, 기득권 유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대전시청의 한 국장급 간부는 직원들에게 시민단체가 대전시장 후보에게 질의한 50여개 공약사항의 수용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지시해 논란을 빚었고, 서울 Y구청에서는 구청 내 정책개발팀까지 구성해 후보자 TV토론을 준비했다고 상대 후보 측이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달 9일 여야 3당의 충북 제천·단양지구당 사무국장들은 "공무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 시장의 치적 홍보와 모임 주선·향응제공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는 성명서를 냈고, 이런 성명전은 충북도 등으로 번져가는 실정이다.

최상연 기자·전국부 종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