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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에 오염된 땅 회복에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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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서울 지하철 녹사평역 등지에서 기름오염 사고가 빈발하는 가운데 기름에 오염된 토양·지하수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 30년 이상 걸린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 처음으로 제시됐다.

국립환경연구원은 기름으로 오염됐던 경기도 의왕시의 도료제조회사인 H화학과 인근 다른 회사 부지 11만9천여㎡(약 3만6천여평)를 4년간 정밀 조사한 결과를 3일 발표했다. 그 결과 오염부지가 자연 정화되는데 앞으로 2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연구원측은 "1990년 이곳에서 처음 오염이 확인된 점을 감안하면 오염정화에 30년 이상 걸리는 셈"이라면서 "기름유출 사고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고"라고 밝혔다.

◇오염 과정=90년 9월 H화학의 인근에 위치한 한 회사 테니스장의 잔디가 말라죽으면서 오염 문제가 제기됐다. H화학의 저장탱크에서 유출된 톨루엔·에틸렌·크실렌 등 오염물질이 지하수를 따라 인근 회사의 부지까지 오염시킨 것이다.

H화학측은 93년부터 지하수를 퍼올린 뒤 기름과 물을 분리 처리하고 오염된 토양을 걷어내는 정화 작업을 계속해왔다.

◇오염 실태=연구원의 조사 결과 토양오염 '우려 기준'(80ppm)을 초과한 면적이 11만9천여㎡였다. 이 중 '대책기준'(2백ppm)까지 초과한 면적은 5만2천여㎡였다.

오염이 가장 심한 지점은 저장탱크 주변으로 1천2백2ppm까지 검출됐다. 오염물질은 10년 이상 장기간 유출됐고, 토양에 남은 기름양도 6만6천4백㎏으로 추정했다.

◇전망=연구팀은 기름오염 덩어리의 중심부가 앞으로 20년 이후에나 오염농도가 기준치 이하로 내려갈 것으로 예측했다.

의왕시 환경녹지과 관계자는 "99년 시에서 내린 토양정화 명령에 따라 H화학측이 정화작업을 계속했으나 다음달 말 끝나는 이행기간 내 작업을 마치기 어려워 기간 연장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환경 전문가들은 "H화학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토양을 정화하고 있지만 좀처럼 복원되지 않고 있다"며 "한번의 사고로 파괴된 자연이 수십년간 회복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 무작정 오염토양을 걷어내기보다 지하수 관정에 공기를 주입해 토양 속 미생물의 기름분해 능력을 촉진할 경우 기름 제거율이 높아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미국에서도 80년 이후 오염토양 복원에 1백50억달러 이상 투입했으나 효과가 작아 자연정화를 촉진하는 기술을 널리 적용·보급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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