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랜만에 본 몸싸움 없는 국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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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02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이른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찬반 투표가 있었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이로써 2002년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수도 이전’ 공약과 함께 시작됐던 세종시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날 본회의는 세종시 논란을 일단락한 것 못지않게 다른 의미도 있다. 8년을 끌어온 뜨거운 이슈였던 세종시 문제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이성적으로 마감됐다는 사실이다. 표결은 평화롭게 이뤄졌다. 여야 의원 12명이 나선 찬반 토론은 차분했다. 단상 점거도, 몸싸움도, 거친 욕설도, 야유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해머와 전기톱까지 동원됐던 폭력 국회에 익숙해진 국민에게 잠시나마 ‘이게 대한민국 국회가 맞나’ 하는 감상마저 들게 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몸싸움과 욕설이 난무하는 파행 국회에 익숙해졌다. 국회 경위의 넥타이를 잡아 목을 조르는 의원들, 탁상에 올라가 발을 구르며 공중부양을 하는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게 됐다. 나쁜 일도 되풀이되면 무감각해지게 마련인가. 사람들은 국회 폭력의 악순환 구조에 길들여졌다.

이런 마당에 보게 된 지난달 29일의 ‘비폭력 본회의’는 신선한 청량제와 같았다. 정치의 본령이 타협과 협상에 있음을 새삼 실감케 해 준 ‘사건’이기도 했다.

오랜만의 몸싸움 없는 국회가 가능했던 건 김무성(한나라당)·박지원(민주당) 원내대표의 역할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했다. 박 원내대표는 세종시 수정안을 안건으로 상정, 표결하도록 하는 데 합의해 준 대신 이른바 ‘스폰서 검사’ 특검법을 얻어 냈다. 김 원내대표도 챙긴 게 있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세종시 수정안의 표결 결과를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은 주고받기식 협상으로 파행과 극한 대결을 피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정치 원로들도 “국회의 본모습을 되찾았다”(이원종 전 정무수석)거나 “소수에 대한 존중과 다수에 대한 승복이 돋보였다”(윤여준 전 의원)고 평가했다.

비폭력 본회의는 국회의원 자신들에게도 유쾌한 경험이 됐을 것이다. 토론은 격렬히, 표결은 차분히 하는 광경은 의원들의 품격을 높였다. 앞으로 있을 숱한 쟁점 법안 처리 때도 이날의 유쾌한 기억을 떠올려 주길 기대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원종 전 수석의 얘기는 여야 의원 모두 귀 기울여 볼 만하다.
“10대 국회 때 야당인 신민당이 총선에서 1.6%를 더 얻고도 국회에선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61석에 그쳤다. 국회가 다수결원칙에 의해 구성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야당이 의사 진행을 방해하거나 물리력을 쓰는 일이 벌어졌다. 그땐 그게 정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상적으로 다수결원칙에 의해 국회가 구성되고 있다. 소수자도 정정당당하게 표결해 자신의 의견을 역사와 국민에게 평가받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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