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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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3년 동안 2002 월드컵을 상징하는 2만20㎞를 달렸습니다."

30일 오전 11시 마라톤으로 지구를 한바퀴 돈 김홍영(金弘永·53·갈비집 운영·사진)씨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텁수룩한 수염, 16㎏이나 줄어든 몸무게가 험난했던 '대장정'을 웅변해 주고 있다.

金씨가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는 세계일주 마라톤에 나선 것은 1999년 3월. 공동 개최국인 일본과 남미대륙, 호주와 유럽 등 24개국을 거쳐 3년2개월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군복무 중 선천성 기관지염으로 16개월간 병상에 누워있던 그는 "이제야 국가에 진 빚을 갚았다"며 홀가분해 했다.

金씨가 하루에 달린 거리는 평균 30㎞. 궂은 날씨와 잦은 다리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다리에 피가 몰리면 직접 침으로 뽑고 달렸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선 대낮에 떼강도를 만나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다.

"돈이 없어 바게트빵과 양배추만 먹고 달리는 고통 속에서 오히려 고난 극복의 오기가 생겨났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이겨내고 월드컵 준비를 성공적으로 마친 데는 우리 민족의 이같은 저력이 그 밑거름이 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25평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마라톤 비용 1억원을 마련한 金씨는 "남미를 돌 때 전화를 하면 마음이 약해질까봐 5개월 동안 집사람에게 연락을 안했던 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글=백성호,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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