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외국어 교육은 우리 생존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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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외국어는 단순히 외국어 하나 더 배우자는 게 아니고 우리 생존의 문제다."

▶ 박철 교수

최근 한국외국어교육학회장으로 선출된 한국외국어대 박철(朴哲ㆍ53.스페인어) 교수의 절규다. 그는 최근 우리의 외국어교육 정책은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1995년 창립된 외국어교육학회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9개 외국어(한국어 포함) 교육의 효율적인 방법과 교육과정을 연구하는 학술모임이다. 21일 그를 만나 바람직한 외국어교육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학회의 설립 취지는.

"우리는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까지 좁다. 믿을 건 인적자원 뿐이다. 운명적으로 외국으로 나가야 생존할 수 있다. 때문에 외국어 교육은 곧 생존과 직결된다. 이처럼 중요한 외국어 교육을 학술적 차원에서 연구해 정부정책에 반영하고 그 정책이 효율적으로 시행되도록 돕자는 것이다."

-현재 정부 외국어교육정책의 문제는.

"지나치게 영어에 치중해 있다. 중학교부터는 제2외국어 교육을 의무화해야 하는데 지금은 특별활동 선택과목중 하나일 뿐이다. 사정이 이러니 전국중학교중 독일어와 불어를 선택한 학교가 각각 2곳, 스페인어는 4곳일 뿐이다. 중학교에 제2외국어 교육은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일본과 중국은 국가차원에서 제2외국어교육을 강조해 중학교 때부터 우리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해 외국어교육을 시킨다."

-세계화시대가 되면서 영어하나로도 서로 의사소통이 되질 않는가.

"과거 수천년동안 우리는 중국일변도 교육을 시켜왔다. 그결과는 서구에, 일본에 처참하게 점령 당하는 신세가 됐다. 서구와 일본을 무시하고 중국하나만 본 교육이 일제 36년 식민통치로 돌아온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해방이후 우리는 영어하나에 올인하면 있다. 한쪽만 보다간 언젠가 또 뒤통수를 맞게 돼 있다. 영어만 강조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를 고립시키는 것이고 스스로 쇄국하려는 정책이다.거대한 중국대륙를 이용하려면 중국어를 배워야 하고 미지의 신대륙같은 남미에 우리의 물건을 팔려면 스페인어로 공부해야 한다. 문명의 보고 유럽은 어떤가. 불어든 독어든 배우지 않으면 그들 대륙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세계를 무시하고 어떻게 살 수 있나."

-한나라를 이해하는데 그나라 말을 꼭 공부해야 하나.

"언어란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나라의 문화와 문명,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그나라 언어를 모르고 그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제2외국어를 언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어릴수록 외국어 교육효과는 좋다. 이 때문에 영어는 이미 초등학교 교과과정으로 내려왔다. 제2외국어는 중학교 과정부터 필수가 돼야 한다. 그리고 학생각자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외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교육당국이 정책적 배려를 해야한다. 예컨대 교사확보나 수업일수 조정등..."

-학회의 입장을 정부에 전달하지는 않았나.

"수차례에 걸쳐 건의 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의 교육이 수혜자중심의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제2외국어에 대한 수요가 없느니 어쩔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정부의 교육정책이라는 게 장기적 안목에서 비전을 만들어 실행에 옮길 것은 옮겨야지 수요가 없다고 반드시 해야할 교육을 안하겠다는 것은 '교육정책이 없다'는 말과 같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말을 배우려 할때 교재등 문제가 적지 않다.

"각 대학과 외국어학회등에서 상당한 교재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영어권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 이외 교재는 빈약하다. 앞으로 이 부분에도 관련 학회에 협의, 내실있는 교재를 만들도록 할 계획이다."

-외국어를 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비결은 없다. 열심히 하는게 가장 좋다. 가능하면 어렸을 때 시작 하는 게 좋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또 단순히 언어만 배우지 말고 그나라 역사와 문화, 철학등을 같이 공부하면 깊이있는 외국어를 배울수 있다."

-향후 학회의 계획은.

"내년부터 8차교육과정 입안이 시작된다. 향후 5~6년동안 우리의 미래교육정책을 연구해 최종안이 마련된다. 이번 교육과정 입안과정에서 제2외국어 교육활성화 방안이 포함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민족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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