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내부부인 게 罪?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오묘한 것은 없다. 난데없이 날아온 큐피트의 화살에 가슴이 뚫리는 순간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자동차처럼 제어능력을 상실하고 미친 듯 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다. 다행히 큐피트의 화살이 같은 과녁을 향해 쏘아졌다면 그것은 축복이요, 행복예감이다.

능력 외면, 인습에 젖은 판단

그런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경우가 있다. 바로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일이다. 사내커플로 발전하는 순간 그들의 일상은 모험의 연속으로 변해버린다.

세상의 모든 연인이 주위의 부러움을 사며 사랑을 속삭일 때 사내커플은 주위의 눈을 피하는 법부터 익혀나가야 한다. 요즘이야 휴대전화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행여 같은 부서의 다른 사람이 목소리를 알아챌까봐 구내전화 걸기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 사내커플들의 처지였다. 그뿐인가. 세상에 널려 있는 것이 선남선녀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사내커플에게는 '그림의 떡'인 곳이 비일비재다. 어쩌다 직장동료에게 데이트를 들키기라도 하면 혼비백산하며 그들의 '입'을 걱정해야만 한다.

흡사 007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가슴 졸이는 데이트를 거쳐 마침내 결혼에 골인해 사내부부로 위상이 달라져도 이들의 '고행'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성에게 강제되던 결혼퇴직제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여느 동료들과 같은 인사상의 대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내 부부사원에게만은 업무처리에 대한 능력보다 인습이 먼저 적용되기 때문이다.

출산·육아·전배·승진 등의 과정에서 사내부부는 늘 한쪽이 직장을 그만 두기를 원하는 무언의 압력을 받으며 살아간다. 더욱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받는 유·무형의 압력은 직종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기혼 여성에게 예외가 아니다.

올들어 서울고법은 회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내부부 사원 중 한명에게 퇴직을 권유하는 관행에 대해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 여성들이 제기한 두 소송에서 재판부는 지난 2월엔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으나 지난 21일엔 합리적 기준이라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민사18부는 회사측이 부부에게 수차례 명예퇴직을 종용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남편들이 순환휴직 대상자가 될 것이고, 그후에 복직이 불투명하며 그들이 바로 정리해고대상자가 될 것이란 점을 고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부부직원의 일방을 대상으로 정했을 뿐이므로 해당 부부가 자율적으로 판단한 사항이고, 퇴직한 여성들이 퇴임식·송별회에 참석했다는 점, 명예퇴직 후 1년간 계약근무 조건이 첨가된 시점에서 퇴직했음을 들어 성차별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과연 그럴까? 사실상 남편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겠다는데 '자율적' 판단이 가능할까? 짧게는 7년, 길게는 14년을 근무했더라도 '울며 겨자먹기식 퇴직'일 때는 퇴임식이나 송별회를 보이콧하는 것이 우리 정서일까? 더구나 반쪽이 '정서적 인질'로 그 직장에 남아 있는데도? 나아가 1년 계약이란 당근이 불확실한 미래를 떠맡을 정도로 달콤할까?

성차별적 해고가 아니라는 서울고법의 이번 판결은 솔직히 실망스럽다. 합법을 가장한 위장된 논리임을 애써 외면하고, 말 그대로 부부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니 여성차별은 아님을 원칙적으로 받아들여도 실망은 여전하다.

직장이 복지시설입니까

'순환명령 휴직대상자 및 정리해고자 선정 때 부부사원의 한쪽을 그 대상자로 정한 것은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용인되는 것'이라는 재판부의 해석 때문이다.

직장은 사회복지시설이 아니다. 생산 효율의 원칙이 가장 엄격히 적용되는 경쟁의 장이다. 경영의 어려움을 돌파하려면 더욱 이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직장동료를 사랑해 온갖 난관을 뚫고 부부가 됐다는 사실이 '일한 만큼 보상받고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다'는 대원칙을 무시하고 마땅히 남보다 앞서 목을 내놓아야 할 만큼 엄청난 '근로자의 죄'란 말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