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협력시대의'韓-러 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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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휴전선의 표지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우리의 염원이다. 남북화해와 신뢰, 그리고 공영(共榮)을 향한 길을 여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비무장지대에서 잠자던 철마가 지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남쪽 도라산역의 기적소리를 들었으며, 북으로부터의 발파음이 멀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DMZ를 세로로 질러 남북을 종단하게 될 철길은 광활한 시베리아를 횡단해 유럽에까지 이른다. 한반도는 대륙권과 해양권을 '철의 실크로드'로 연결하며 세계 3대 경제권의 양축-서구와 동아시아의 접점을 이루게 된다.

'철마'는 러시아의 대지를 가로지른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의 소냐가 라스콜리니코프로 하여금 하늘이 아닌 땅에 참회를 맹세케 하는 것은 대지를 향한 러시아인의 정서와 사랑을 상징한다.

격변의 세기를 살아온 러시아는 이제 '90년대의 시행착오'를 거쳐 가능성과 잠재력에 머물던 경제를 안정시키고 도약을 준비하는 약동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고리로 구미와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대립이 아닌 조화의 세계질서 형성에 진력하고 있다.

TSR/TKR 연결사업은 남과 북,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데 머물지 않고, 수교 12년의 한·러시아 양국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분야에 걸친 포괄적 관계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또한 냉전으로 잃은 시간을 뛰어넘고 잊혀졌던 민족의 대륙적 정체성을 되찾으며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공동의 번영을 향한 촉매도 될 것이다.

오는 7월 14일부터 30일까지 정부가 주관하고 러시아 진출 한국기업들이 협찬하는 '한·러 친선특급' 사업이 시행된다.

각계 인사와 대학생 등을 망라하는 2백50여명의 우리 사절단과 러시아측 관계 인사들이 여기에 참여한다.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로프스크·이르쿠츠크·노보시비르스크·에카테린부르크·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주요 도시를 차례로 방문해 지역대표 간담회·기업인 상담회·한국영화제와 사진전·사물놀이공연·청년포럼과 축제 등을 열어 교류협력의 틀을 넓히고 풀뿌리 우호의 꽃을 피우게 된다.

종착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초대 상주공사였던 이범진 열사의 추모비제막 등 추모행사를 연다.

1901년 부임해 1905년까지 국가를 대표하다가 을사보호조약 체결로 외교관의 지위를 상실한 후 나라를 잃은 분노로 1911년 자진한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후손의 귀감이 될 행적을 기리는 것이 여정의 대단원을 이루게 된다.

러시아는 유럽국가인 동시에 아시아 국가다. 동양의 철학과 사상에 심취해 "동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한 문호 톨스토이를 섬기는 러시아인들은 지금 동양의 친선사절을 마음으로부터 기다리고 있다. 민족수난사의 산 증인인 고려인 20만명도 조국의 열차를 고대한다.

이제 머잖아 우리가 바라고 북한이 동참하며 러시아인이 환영하는 TSR/TKR 연결이 현실이 될 것이다. 동서의 만남을 기약하고 동북아 협력의 새시대를 여는 '희망의 친선열차'에 많은 분의 동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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