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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바우두' 명예회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돌고래 같았다. 머리를 푸덕이며 먹이를 날렵하게 받아먹는 것처럼. 용수철처럼 튀어오른 머리는 날아오는 볼을 그대로 찍어내렸고 볼은 골네트를 가르며 '아트 사커'에 흠집을 냈다.

설기현(23·안더레흐트)이 살아났다. 그의 부활은 치열하게 지속된 히딩크호의 스트라이커 경쟁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지난 26일 프랑스전 전반 41분, 승부의 추를 급격히 한국 쪽으로 돌리는 헤딩슛을 터뜨리며 설기현은 극심한 골가뭄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2월 두바이 4개국 대회 아랍에미리트전 이후 꼬박 15개월여 만이다.

경기 후 설기현은 "평소에 하던 세트 플레이가 그대로 적중됐다. 좌우에서 선수들이 움직일 때 가운데를 파고든 게 주효했다"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전문가들로부터 '유럽과 상대해 유일하게 통할 수 있는 선수'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설기현에게 지난 15개월은 침묵의 시간이었다. 허리·허벅지 등 잔부상에 시달리며 경기 감각을 놓치기 일쑤였다. 히딩크 감독의 총애 속에 번번이 스타팅 멤버로 경기에 나섰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잉글랜드전이 끝나고 잉글랜드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은 "설기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숀 캠블 등 잉글랜드 수비수와의 몸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고 등지고 뒤돌아 서는 것도 탁월했다"고 높이 평가한 데서 드러나듯 설기현의 존재는 항상 위협적이었다.

"사이드에서 뛰어 골운이 따른 것 같았다"는 말처럼 이날 설기현은 부상으로 빠진 이천수를 대신해 왼쪽 공격수로 나서면서 한결 가볍게 움직였다. 원톱으로 설 경우 상대 중앙수비수 등 2~3명이 달려들어 몸싸움에 치중해야 했지만 사이드로 위치를 바꾸면서 행동 반경이 훨씬 더 커진 것이다.

이날 활약으로 설기현은 폴란드와의 본선 첫 경기에서 스타팅 멤버로 뛸 것이 확실시된다. 또한 그의 성장은 수비진에 비해 주전 확정이 유동적이었던 공격진에도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듯 베스트 일레븐의 확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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