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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80%가 경비실 없어 출입통제 무방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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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달 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2학년 여학생(8)이 납치돼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범인 김수철(45)이 학교 정문으로 들어온 뒤 아이를 데리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잡혔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학교가 오히려 범행 무대가 된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대부분의 학교가 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비실이 없는 학교가 다섯 곳 중 네 곳, 정문에 CCTV가 없는 학교가 두 곳 중 한 곳꼴이었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달 28일 김수철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5월 중순부터 3주 동안 서울 및 수도권의 범죄 발생률이 높은 초·중·고교 30곳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했다고 밝혔다. 범죄학(박미랑 형사정책연구원 박사)·경찰학(박현호 용인대 교수)·건축학(강석진 고려대 박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학교가 범죄 예방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았다. 많은 공립학교가 운동장을 지역 주민을 위한 체육 활동 공간으로 개방하고 있었다. 박미랑 박사는 “출입자들의 범위가 너무 넓고 다양했다”며 “외부인의 출입이 잦을수록 해당 학교의 학생과 교직원들은 ‘모르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야간 자율학습이 많은 고등학교의 경우 대부분 야간 조명 관리가 부실했다. 많은 학교가 운동장과 보행로에 조명을 설치하고 있었으나 저녁 이후 취약 시간대에 조명시설을 가동하는 학교는 소수에 그쳤다. 조명등이 망가진 채로 방치된 경우도 있었다. 박미랑 박사는 “등나무 밑이나 가건물 주변이 어두워 사람이 있는지 여부도 알 수 없었다”며 “범죄자에게 숨을 공간을 제공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CCTV 카메라가 정문에 설치되지 않은 학교가 30곳 중 16곳(53.3%)에 달했다. 많아야 2~3개 설치돼 있었다. CCTV는 주로 학교 정문이나 후문, 교사들이 이용하는 주차장 등에 있었다. CCTV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교사들이 ‘교권과 학생인권 침해’를 이유로 반대해 교사 주차장에만 설치한 학교도 있었다. 강석진 박사는 “CCTV 수가 적으면 사각지대가 많이 생기게 된다”면서 “그나마 지정된 책임자가 CCTV를 모니터링하는 게 아니라 사건 수사 용도로 사용하는 실정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 조사에서도 전국 학교의 CCTV 설치율은 58.9%에 불과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주 출입문에는 경비실이 없어 외부 방문객의 출입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있었다. 전체 30개 학교 중 경비실이 없는 곳이 23곳(76.6%)이었다. 일부 사립 고등학교의 경우 경비실이 있었으나 방문자의 신분이나 방문 목적을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조사팀은 “체육시간과 이동수업 등으로 학생들이 교실을 비운 경우 일부 교실은 문을 잠그지 않아 외부인이 드나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를 개방하고 공원으로 조성하는 ‘열린 학교’ 사업의 문제점도 제시됐다. 2001년 이후 전국 800여 개 학교가 주민 등에게 교정을 개방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학습을 방해하고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박현호 교수는 “무조건 학교 담을 허물 것이 아니라 학교 시설 이용·관리에 관한 정책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사팀은 학교 출입문을 최소화하고 경비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교실과 교무실 창문을 가린 커튼과 시트지를 없애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잠재적 범죄자에게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범죄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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