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 모셔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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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계 명문대학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기업이다. 수십억달러(수조원)규모의 자산에다 연간예산만도 억달러단위가 보통이다. 대학운영 주체의 이름부터가 '하버드 코퍼레이션(하버드법인)' '예일 코퍼레이션'이다. 따라서 그 총장은 경영자가 제격이다. 대학이 등록금장사라고 하지만 미국 공립 및 주립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15%, 명문 사립대학들도 40%에 불과하다. 자산을 굴려 운용수익을 불리고 기부금과 연구용역을 많이 끌어와야 한다.

그렇다고 경영의 귀재만이 총장의 전부는 아니다. 대학은 그 나라의 지적(知的)엔진이다. 미래의 지도자가 양성되고, 국가전략이 형성되고, 나라 교육의 표준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따라서 총장에게는 학문적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고도의 지성에다 가르침에의 열정, 그리고 대학교육에 대한 비전이 요구된다. 말이 그렇지 이런 자격자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총장 선임이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밖에 없다. 후보 추천을 받고, 선정위원회가 스크린을 해 최종 선임되는데 줄잡아 열달은 걸린다. 그러나 일단 총장에 선임되면 재임기간은 보통 10년을 넘는다. 하버드는 3백66년 역사지만 현 총장 로런스 서머스는 27대 총장이다. 전임 닐 루딘스틴은 10년을, 그 전임 데릭 보크는 20년을 재임했다. 시카고대의 로버트 허치슨 총장은 22년을 재임하며 무명의 대학을 노벨상의 주요 산실로 탈바꿈시켰다.

'우리학부 출신'을 고집하는 영토의식은 하버드마저 포기한 지 오래다. 보크 총장은 스탠퍼드 출신이었고 서머스 현 총장은 라이벌 MIT 경제학부를 나왔다. 시카고의 허치슨 총장은 예일대에서 모셔왔다.

원로 대가급의 총장 추대도 옛말이다. 연구시간을 빼앗긴다고 본인들부터가 사양하고, 이 틈바구니에서 대학행정가나 관료들이 총장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이런 총장은 콧대높은 교수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기 일쑤다.

거대기업이면서도 이렇다 할 주인이 없기 때문에 대학의 중심이자 대학정신의 보루로서 총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따라서 유능한 인재를 눈여겨보며 모셔오기 경쟁을 벌이는 것이 저간의 시류다.

우리의 서울대와 고려대가 후임총장 선임을 놓고 진통을 거듭 중이다. 대학총장이 그 시대 최고지성으로 추앙받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영안목과 국제감각이 그 못지 않게 중시된다. 그 총장을 교수들의 인기투표로 적당히 뽑거나 재단으로부터 '낙점' 받아 될 일인가. 향응에다 파벌 줄타기를 잘해야 당선되고, 취임 후 논공행상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총장직선제는 대학의 지성인사회가 할 일이 아니다. 교수임용에서 '철밥통'을 깨고, 경쟁을 촉진시켜 '세계 속의 한국대학'으로 거듭나려면 학내직선제의 틀을 과감히 부수고 바깥에서 총장을 모셔와야 한다.

학내 기득구조와 학과간·학문적 장벽을 허무는 개혁작업일수록 총장의 비전과 도전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서울대가 진정 한국 최초의 '글로벌대학'을 지향한다면 차제에 발상을 바꿔 총장을 '수입'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국립서울대 특성상 너무 급진적이라면 그 전단계로 외국인교수의 대폭 확충 등 교수진의 국제화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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