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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유럽의 젊은 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주 실시된 네덜란드 총선에서 승리해 차기 총리로 사실상 확정된 얀 페터 발케넨데 기민당 당수에게는 두 개의 별명이 있다.

승리를 확인한 뒤 부인과 환호하고 있는 외신 사진을 본 독자라면 기억하시겠지만 그는 대학생을 연상케 하는 앳된 용모를 지니고 있다. <본지 5월 17일자 11면>

46세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동안(童顔)과 트레이드 마크처럼 끼고 다니는 도수 높은 둥근테 안경 때문에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해리 포터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경쟁자들은 "해리 포터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느냐"며 그의 경륜을 문제삼았지만 40대의 패기와 신선함, 때묻지 않은 지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감을 꺾지는 못했다.

기독교 철학을 전공한 대학교수 출신으로 1998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발케넨데는 불과 3년여 만인 지난해 9월 경선을 통해 기민당 당수로 선출됐다. 당의 내분을 추스르고 당권을 장악해 가는 발케넨데의 수완에 감탄하면서 네덜란드 정치인들은 그에게 JP란 또 하나의 별명을 붙여줬다. 앞 이름과 중간 이름의 이니셜을 붙여 만든 약칭에 불과하지만 네덜란드에서 JP는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상징한다.

네덜란드 기민당의 승리는 '캐비어(철갑상어알) 사회주의', '하바나(쿠바산 시가) 사회주의'에 대한 대중의 저항과 반감을 반영한 또 하나의 사례로서 유럽의 우경화(右傾化)에 대한 심증을 더욱 굳혀줬다고 유럽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분배와 기회의 정의를 내세운 좌파주의자들이 집권 후 대중과 유리된 채 '그들만의 귀족층'으로 각질화한 데 대한 반동(反動)이 우파의 연쇄집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발케넨데의 부상이 갖는 더 중요한 의미는 우경화보다 40대의 집권에 있다. 90년대 중반을 분수령으로 유럽에서는 40대 정치인의 집권이 줄을 잇고 있다. 95년 41세의 나이로 장 클로드 융커가 룩셈부르크 총리로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스웨덴의 예란 페르손(47세),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43세), 영국의 토니 블레어(44세), 벨기에의 기 베르호프스타트(46세), 덴마크의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48세) 등 40대 총리가 줄지어 탄생했다.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중 8개국이 40대를 국정의 최고책임자로 선택했다.

40대 총리를 배출한 유럽국들은 예외없이 내각책임제를 택하고 있다. 내각책임제 아래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색깔을 지닌 정당간 연합을 통한 정권의 창출과 유지가 불가피하다. 타협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동맥경화 증세를 보이지 않는 유연한 사고가 필수적이다.

20세기 미국의 역대 대통령 17명 가운데 40대에 대통령이 된 사람은 세 명뿐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43세에 대통령이 됐고, 존 F 케네디는 44세, 빌 클린턴은 47세에 당선됐다.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차이만으로 미국과 유럽 정치의 세대차를 설명할 수는 없다. 늙은 유럽이 젊은 정치를 표방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보다 40대의 활발한 정치 참여에서 찾아야 한다. 개혁 마인드로 무장한 40대 엘리트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또 그들이 능력에 따라 대접받는 풍토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15대 1이라는 프랑스 총선의 기록적 경쟁률은 40대의 적극적 참여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젊음이 반드시 능력과 깨끗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륜이란 미명(美名) 뒤에 감춰진 부패와 무능과 무지의 가면을 벗겨내지 않는 한 우리의 정치적 도약은 기대하기 힘들다. 무경험이 나쁜 경험보다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한국의 40대여, 언제까지 수동적 관전자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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