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해외이전 괜찮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외국기업은 들어오려 하고 한국기업은 나가려 한다. 한동안 감소 추세였던 외국인 투자가 올해 4개월 동안 44%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최근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지역 제조업의 44%가 생산거점을 이미 해외로 이전했고 34%는 이전을 계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올 1·4분기 해외 직접투자가 47%나 증가했다.

세계 시장서 경쟁할 기반

기업이 투자결정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고려 요인은 시장이다. 같은 시장을 놓고 외국기업은 한국시장을 매력적으로 보는데 우리기업은 우리 시장을 왜 힘들어할까? 세계 어느 곳에도 누구에게나 다 좋은 시장도 없고 또 절대로 가능성이 없는 시장도 없다. 신발을 안 신는 미개국의 원주민들을 보고 '이곳은 신발 팔기는 다 글렀다'라고 보는 시각이 있고 '신발 신을 고객이 깔렸다'고 볼 수도 있다. 분명 외국인이 한국을 보기에는 풍부한 구매력과 소비수준, 숙련된 노동력, 꽤 축적된 기술력 등 기초여건이 돼 있고, 또 최근 수년간의 기업·금융 등의 구조개혁으로 경제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국가 신인도가 몇 등급 높아졌기 때문에 한국시장은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비즈니스 위크에서 아시아에서의 최대 투자 유망국의 하나로 한국이 선정된 바 있다. 그 이유는 중국은 이미 외국자본 포화상태이고, 동남아는 정치·경제 전부 불안하고, 일본은 장기적 디플레 때문에 투자해 봐야 비용도 못 건진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으로밖에 올 수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외국 자본은 별무리 현상이라고 해서 몰려다닌다. 한번 투자의 물꼬가 터지면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한번 방향을 돌려 나가면 수년간 정부에서 갖은 애를 써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최근의 외국인 투자의 증가세는 매우 고무적이고, 계속 탄력을 받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특히 최근의 외국인 투자 증가분이 대부분 미국에서 들어온 것은 우리의 기업지배 구조나 경영 방식이 선진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될 수 있다. 또 이제는 마구잡이 식의 외국인 투자의 양적 팽창보다 양질의 투자를 유도해 나가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미국의 담배회사 설립 투자에 관해 세제지원을 보류한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그러면 우리기업이 해외로 줄줄이 나가는 현상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그간 중국에 세계의 다국적기업들이 다 진출했는데 우리는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우리기업들이 중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현지거점의 확보 차원에서 중요하다. 판매·제조·R&D 등이 복합적으로 진출해 세계기업들과 경쟁해 나갈 기반을 만들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금세기에 살아나갈 시장을 놓친다.

그런데 제조업체들이 한국 시장이 싫어서 나간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래서 떠난 기업은 중국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작다.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한국에서 인력도 구할 수 없고 노임·물류비 등 비용도 많이 들고 각종 규제에 시달리면서 기업으로 대접도 제대로 못 받는 제조업들일 것이다.

한국 기피 풍조는 경계를

알찬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벤처기업이란 따가운 시각 때문에 한국을 떠나려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어렵게 오더를 받아서 수출이 좀 되려 하면 환율이 떨어지고 금리가 올라가 어깨 힘이 빠져 있는 중소제조업들이 많을 것이다. 또 기름때 낀 장갑 한번 안 껴본 사람들끼리 몇십억원의 검은 돈을 그렇게 쉽게 주고받는 현실을 보고 떠나려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외국기업들이 들어오고 또 우리기업이 활발하게 해외 진출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 자본이 첨단 기술·경영기법과 같이 한국에 들어오고 우리기업은 중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나가는 것은 좋은 흐름이다. 그것이 한국이 동북아의 비즈니스 중심지가 되는 길이다. 그렇지만 들어와야 될 외국기업이 들어와야 되고 나가서는 안될 우리 기업은 이 시장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감싸주고 보호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이 땅에서 기업 특히 제조업을 하는 자부심과 사기를 갖게끔 정교하게 배려해줘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